한국생명공학연구원 바이오나노연구센터 책임연구원팀이 테라그노시스 기술에 필요한 소재를 연구하고 있다. /생명연 제공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바이오나노연구센터 책임연구원팀이 테라그노시스 기술에 필요한 소재를 연구하고 있다. /생명연 제공
영화 ‘이너스페이스’에선 주인공이 세포보다 작은 잠수정을 타고 인체를 탐험하는 모습이 나온다. 몸 속에서 직접 질병을 발견하고, 잠수정의 팔을 이용해 치료하는 것은 당시에 상상한 미래였다. 상상에 불과하던 이 같은 기술이 오늘날 과학 및 의학의 발달로 점점 현실화하고 있다.

증상이 곧장 나타나는 대부분의 감염성 질환과 달리 암은 발병 후 상당 기간 특이적인 증상이 없다. 이 때문에 정기적인 건강검진 등 최대한 빠른 조기 진단으로 치료 시기를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조기에 발견할수록 예후가 좋고 생존율도 높아진다.

암 진단에는 내시경 검사나 자기공명영상(MRI), 컴퓨터 단층촬영(CT) 등 영상 검사가 우선 쓰이며 조직검사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검사하려면 비용이 많이 들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따라서 많은 연구자가 간단하면서도 적은 비용으로 빠르게 암을 진단하고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왔다.

그중 ‘테라그노시스’는 연구진이 내놓은 새 답이다. 암을 ‘진단’하면서 동시에 ‘치료’할 수 있다. 치료(therapy)와 진단(diagnosis)을 합성한 이름이다. 테라그노시스 기술 구현을 위해선 의공학 및 의약학 분야 여러 학문 간 융합 연구가 필수다. 진단과 치료를 동시에 하는 개념은 매력적이었지만 상용화 단계까지 가는 길은 순탄치 못했다. 잇단 임상시험 실패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허가 문턱을 넘지 못했다. 최근에야 각종 항체 및 나노의학기술이 발달하고 서로 융합하며 새 돌파구가 생겼다.

광열 효과는 테라그노시스의 핵심이다. 암세포 진단을 위한 조영제에 빛을 쪼이면 암세포가 있는 국부 위치에만 강한 열을 발생시킬 수 있는데, 이게 광열효과다. 이 열로 암세포를 태워죽일 수 있다. 조영제가 함께 투여됐기 때문에 외부에서는 암세포의 분포를 바이오이미징 기술로 확인할 수 있다. 진단과 치료는 물론 치료 후 결과까지 추적할 수 있다.

성과도 나오고 있다. 최근 항체에 방사성물질을 달아 암을 진단할 뿐 아니라 방사성물질이 뿜는 방사선으로 암조직을 태우는 글로벌 제약사의 항암 신약이 FDA 허가를 받아 쓰이기 시작했다. 암세포가 발현하는 항원과 결합하는 항체에 방사성동위원소를 붙인 방사성의약품이다. 내뿜는 방사선 강도에 따라 조영제로도 쓸 수 있고, 직접 방사선으로 암세포를 죽이는 치료제로도 사용 가능하다. 비슷한 원리로 작동하는 신약을 퓨쳐켐, 셀비온 등 국내 신약벤처기업도 개발해 임상시험을 진행 중이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도 테라그노시스에 사용할 수 있는 융합소재를 새롭게 개발했다. 체내 투여 후 산성 조건과 같은 암세포 환경과 만나면 강한 형광과 MRI 신호를 낼 수 있다. 외부에서는 이미징 기술로 이를 촬영해 정확한 암의 위치를 알 수 있다. 이렇게 진단된 암세포 부위에 외부에서 근적외선 파장의 빛을 조사하면 열을 발생시키는데, 이 고열로 암세포의 성장을 막거나 사멸시킨다. 진단부터 광열치료까지 가능한 테라그노시스 나노복합체다.

암 진단하면서 동시에 치료…'테라그노시스' 기술 급진전
연구팀은 실험쥐에서 암세포의 발견과 치료 효과를 확인했으며, 미래 나노의약 소재로서 활용 가능성을 높였다. 생명연은 테라그노시스에 사용할 수 있는 융합소재가 암의 정밀진단과 치료에 쓰여 국민 건강 및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