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봄, 영국 런던에서 일하던 박정미씨는 직장에서 해고된 뒤 우울한 나날을 보냈다.

무엇보다 살인적인 런던 물가에 당장 내야 할 방값 걱정을 해야 하는 신세가 됐다.

박씨는 돈이 없어도 살아갈 방법을 궁리하다 '돈을 쓰지 않으면 된다'는 '단순한' 결론에 이르렀고 이를 실천하기 시작했다.

신간 '0원으로 사는 삶'(들녘)은 이렇게 시작돼 2016년 10월까지 진행됐던 '0원살이 프로젝트'의 여정을 담은 책이다.

현대 사회에서 돈을 쓰지 않고 사는 삶이 가능할까.

자급자족을 원칙으로 하는 영국 웨일스의 유기농 농장 '올드 채플 팜'에서 시작된 2년여간의 여정은 이런 의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책에 실린 저자의 경험은 단순히 시골에서 자급자족으로 생활하며 돈을 쓰지 않는다는 차원을 넘어선다.

돈 안 쓰고 살기 가능할까…신간 '0원으로 사는 삶'
잠잘 곳을 찾기 위해 런던에서 보트살이를 하기도 하고 오랫동안 비어 있는 건축물이나 땅을 점유하는 '스쿼팅'(squatting)으로 숙소를 해결하기도 한다.

끼니를 위해 '스킵 다이빙'(Skip diving)을 하기도 했다.

스킵 다이빙은 스킵이라 불리는 커다란 쓰레기통에 다이빙해 먹을거리나 유용한 물건 등을 줍는 행위를 뜻하는 영어 표현으로, 식당들이나 상인들이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이나 다음날 팔 수 없어 폐기하는 채소와 과일들을 가져가는 것이다.

이동을 위해 히치하이크를 하다 아찔한 순간들을 겪기도 하지만 모든 여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것은 기꺼이 손을 내밀어주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박씨가 프로젝트의 취지를 설명하면 잘 곳을 내어주고, 먹을 것을 나눠주고 자전거를 지원해주기도 했다.

이를 두고 저자는 '돈 없이 살기'가 아니라 '남의 돈으로 살기'를 하는 게 아닐까 회의하기도 한다.

그러나 선뜻 손을 내밀었던 사람들은 그에게 "도움을 받아봐야 아낌없이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며 도움을 받고 또 다른 이를 돕는 '선행 나누기'에 대한 깨달음을 준다.

거창한 목표 아래 시작된 것은 아니었지만 2년여의 프로젝트는 결국 소비와 환경, 자연, 자유, 행복 등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지며 저자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현재 지리산의 외딴 숲속 오두막에 사는 저자는 이제 돈을 쓰며 살아가지만 더는 관심사에서 '돈'이라는 화두 자체가 사라져버렸다고 말한다.

"돈이 없다고 세상이 끝나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돈이 없음'은 나를 진짜 세계로 향하게 하는 날개가 되어 주었다.

(중략) 그리고 마침내 삶의 목적과 궁극의 평화에 이르는 길을 만났다.

이 모든 기적은 나의 삶에서 '돈'을 지워버린 이후부터 시작되었다.

0원살이의 기적이다"(14-15쪽)
454쪽.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