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빌로니아의 왕 "저질 맥주 만든 자에 극형을 내려라" [서평]
1521년 4월 17일 독일의 도시 보름스.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가 주재하는 제국의회 참석을 앞두고 종교개혁의 투사 마르틴 루터(1483~1546)의 목은 바짝바짝 타들어갔다. 세계 최강의 황제와 추기경, 각지의 강력한 제후들 앞에서 목숨을 걸고 종교개혁 사상을 설파해야 했기 때문이다. 담이 세기로 유명한 루터였지만, 까딱 잘못하면 목이 날아가는 이런 상황에서는 침착할 도리가 없었다.

그 때 루터의 앞에 ‘구세주’가 나타났다. 루터의 비서가 맥주 1L가 든 맥주잔을 어디선가 가져온 것. 루터는 잔을 받아들고 단숨에 맥주를 들이킨 뒤 황제와 제후들 앞으로 천천히 걸어나갔다. 그리고 술기운을 빌려 침착하면서도 담대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농부 출신의 신학박사에 불과한 루터가 황제와 추기경 앞에서 죽음을 무릅쓰고 소신을 밝히는 모습에 사람들은 감동했고, 이후 종교개혁의 불길은 더욱 거세졌다. 그 시작은 맥주였다. 영국의 역사학자 토마스 칼라일이 “유럽 역사상 최대의 사건”이라 평가한 이 연설에 맥주의 존재가 적잖은 영향을 미친 셈이다.

<세계사를 바꾼 맥주 이야기>는 이처럼 맥주와 관련한 흥미로운 역사 속 이야기들을 소개하는 책이다. 문화학자이자 맥주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 무라카미 미쓰루가 썼다.

책은 4000년에 가까운 시간을 다룬다. 기원전 18세기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 왕이 ‘저질 맥주’를 생산한 이들에게 극형을 내린 얘기부터 20세기 아돌프 히틀러 일당이 독일 뮌헨의 맥줏집 호프브로이하우스에서 일으킨 정치 폭동까지를 모두 아우르기 때문이다. 맥주잔이 도기에서 유리로 바뀌면서 ‘맥주 색’이 중요해진 이야기, 벨기에 양조장들이 세계 최고로 성장한 비결 등 현대 맥주 산업의 여러 면모도 함께 살펴볼 수 있다.

전체 내용에서 세계사의 비중은 생각보다 높지 않다. 주요 내용은 맥주의 역사고, 서양사는 독일 등 중서부유럽 국가들을 중심으로 가볍게 훑고 지나가는 정도다. 맥주 마니아라면 차가운 맥주 한 잔과 함께 가볍게 읽어볼 만한 교양서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