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폴란드 민간 에너지 기업과 원전 개발을 협력키로 했습니다.
사실상 수주나 다름 없는 것 처럼 밝히고 있지만, 정작 원전 수출까지는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취재기자와 자세히 알아봅니다.
산업부 방서후 기자 나와 있습니다.
방 기자, 우리나라가 폴란드 원전 개발에 참여하기는 하는 겁니까?
<기자>
일단 수주 여부, 사업 규모 어떤 것도 정해진 게 없습니다.
먼저 사업 주체와 협력 내용을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폴란드 정부가 추진하는 첫 원자력 발전소, 그러니까 루비아토브-코팔리노 일대에 6기를 짓는 사업은 미국 웨스팅하우스가 가져갔습니다. 정확히 사업자가 정해진 것이고요. 이걸 소위 1단계 사업이라 합니다.
이와 별개로 폴란드가 퐁트누프 지역에 원전을 추가로 짓기로 했는데, 이걸 2단계 사업이라 합니다.
다만 폴란드 정부 예산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는 민간 주도의 사업이고, 아직 구체적인 규모와 건설 계획이 나오진 않았지만 1단계보다는 규모가 작은 2기에서 4기 정도로 예상됩니다.
무엇보다도 한수원이 아직 사업자로 선정된 게 아닙니다. 해당 사업을 추진한다는 폴란드 민간 발전사인 제팍(ZE PAK)과 법적 구속력이 없는 협력의향서(LOI)를 체결한 단계입니다.
<앵커>
다른 업체와 경쟁하거나 무산될 수도 있다는 겁니까?
<기자>
그렇습니다. 말 그대로 의향서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우리 정부는 의향서에 한국형 원전인 'APR1400'이 명시됐다는 점에서 입찰 없이 부지 조사와 타당성 조사 등의 준비 과정을 거치기만 하면 바로 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폴란드 정부도 우리가 본계약을 체결할 가능성에 대해 "100%"라고 화답하면서 거의 수주를 따낸 것처럼 여겨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본계약 체결은 빨라야 내년 말에서 내후년, 착공은 그보다 2~3년 뒤인 2025년에서 2026년에나 가능할 전망이고요.
그 마저도 폴란드 측은 너무 이르다는 입장을 보이는 만큼 내년 말 본계약을 기대하는 한국에 협조를 얼마나 잘 해줄 지 의문이 드는 상황입니다. 일각에서는 우리가 벌써 폴란드의 함정에 빠졌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앵커>
무슨 뜻이죠?
<기자>
쉽게 말해 폴란드가 남발한 의향서 중 하나를 우리가 너무 쉽게 물었다는 의미입니다. 실제로 지난 1년 여 간 폴란드가 체결한 원전 관련 의향서는 이번 한수원 건을 포함해 7건에 달합니다.
야체크 사신 폴란드 부총리는 100% 한국 수주를 장담하면서도 남은 결정은 기업 경영진에 달렸다는 단서를 붙였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의향서를 맺은 당사자는 양국 정부가 아니라 한수원과 제팍이기 때문입니다. 이 의향서라는 게 얼마나 변수가 많은 지 사례를 하나 소개해드리면요.
한수원이 제팍과 의향서를 맺은 날, 동시에 제팍이 의향서를 파기한 회사가 있습니다.
이 제팍이란 곳은 원래 퐁트누프에서 화력발전소를 운영 중이고, 이걸 2024년까지만 운영한 뒤 해당 부지에 소형모듈원전(SMR)을 지으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폴란드의 또 다른 에너지 회사인 신토스 그린 에너지(Synthos Green Energy), GE히타치 등과 지난해 8월 투자의향서를 체결했습니다. 이 사업 역시 당시엔 폴란드 정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올해 6월 제팍과 신토스 간 체결된 계약의 선행 조건을 이행할 기간이 종료되면서 계약 해지 사유가 발생했는데, 처음엔 계약을 해지하지 말자던 제팍이 불과 반년도 되지 않아 계약을 깨고 바로 한수원과 의향서를 맺은 겁니다.
물론 두 회사 간 갈등이 정확히 어디서 불거졌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만큼 의향서에만 의존하면 안 된다는 건 명확해 보이고요.
폴란드가 서류 작업에만 4년에서 5년은 걸린다고 밝힌 상황에서 마침 한수원과 제팍이 맺은 의향서의 유효 기간은 3년입니다. 계약 당사자의 동의 하에 1년 연장될 수 있다고는 하지만 이미 제팍은 말을 바꾼 전적이 있죠.
<앵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원전업체 웨스팅하우스가 한수원을 상대로 소송까지 제기했습니다.
어떤 내용입니까?
<기자>
웨스팅하우스는 한수원이 폴란드 등에 수출을 추진하는 한국형 원전, 즉 APR1400에 자사가 2000년 획득한 '시스템80' 원자로 설계 기술이 들어 있다고 주장합니다.
때문에 한국이 원전을 수출하려면 미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취지의 지식재산권 소송을 미국 법원에 제기한 겁니다.
해당 주장이 받아들여지면 한수원이 폴란드 뿐 아니라 체코나 사우디아라비아 등 수주를 추진하는 모든 국가에 원전을 수출하는 데 어려움이 따를 수 있습니다.
사실 웨스팅하우스는 지난 2009년 한수원이 UAE에 원전을 수출할 때도 지식재산권을 문제 삼았습니다.
한수원은 당시 핵심기술 자립을 이루지 못한 상황이라 웨스팅하우스에 기술자문료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분쟁을 마무리 지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만큼은 웨스팅하우스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낮다는 게 우리 측 입장입니다.
UAE 때와 달리 핵심기술 자립에 성공했고, 체코와 폴란드는 미국 정부의 허가가 필요 없는 일반허가 대상국이기 때문입니다.
일단 소송이 걸렸다고 해서 다른 나라와 추진 중인 수출 논의가 멈추는 건 아닌데요.
소송 자체에 시간이 오래 소요되고 수출 상대국에서 우리를 배제할 수 있는 요인이 되는 만큼 신속한 합의가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입니다.
<앵커>
그럼 이 모든 악재를 뚫고 폴란드 원전을 짓게 된다면 우리 기업들이 따낼 수 있는 일감은 얼마나 됩니까?
<기자>
원전업계에서는 퐁트누프 원전 사업 규모를 한 기당 50억 달러, 우리 돈으로 7조원 정도라고 치면 최소 15조원(2기), 4기를 짓는다면 많아야 30조원 정도라고 추산합니다.
그러면 여기서 우리 기업들은 얼마나 가져가느냐. 관건은 APR1400을 수출하느냐 마냐 입니다.
APR1400을 그대로 수출한다면 설계를 맡은 한국전력기술부터 기당 2천억원, 최소 4천억원 이상의 매출이 발생합니다.
그리고 기자재 매출은 기당 1조2천억원, 최소 2조4천억원 이상이 예상되는데요. 두산에너빌리티가 사실상 유일한 수혜주입니다.
설계와 기자재 공급 외에 시공사는 아직 불확실하지만 현대건설과 대우건설, 삼성물산 등이 잠재적 후보자로 거론됩니다.
만에 하나 웨스팅하우스의 소송에 막혀 APR1400을 수출하지 못한다면 수주 금액은 확 떨어집니다.
지난 8월 수주한 이집트 엘다바 원전 사례에서 보듯 설계 매출은 발생하지 않고요. 기자재도 증기 발생기와 원자로 정도만 계약해야 해서 기당 1,200억원, 최소 2,500억원 정도로 눈높이를 낮춰야한다는 분석입니다.
<앵커>
잘 들었습니다. 방서후기자 shbang@wowtv.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