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기밀까지 공개' 자신감…한발 더 달아나는 'SK하이닉스'
SK하이닉스가 5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인 HBM3E 수율이 80%에 달한다고 밝혔다. 업계에서 예상한 60~70%를 크게 뛰어넘은 수치다. 수율은 불량품을 뺀 정상 제품 비율로, '수율 80%'는 생산품 100개중 80개가 정상이란 얘기다. 이 수치가 높을수록 생산비용과 시간이 크게 줄어들어 수익성이 높아진다.

권재순 SK하이닉스 수율 담당 부사장은 21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과 가진 인터뷰에서 “HBM3E 칩 수율이 목표치인 80%에 거의 도달했다"며 "덕분에 양산에 필요한 시간을 50% 단축했다”고 밝혔다. SK하이닉스는 HBM시장의 '최대 큰손'인 엔비디아에 HBM3E를 공급하고 있다. 최신 제품인 HBM3E는 얼마전부터 상용화 단계에 들어갔다.

HBM은 여러 개의 D램을 수직으로 겹겹이 쌓아 TSV(실리콘관통전극)로 연결한 차세대 메모리다. 인공지능(AI) 가속기에 반드시 들어가는 '필수 반도체'가 되면서 삼성전자, 미국 마이크론 등과 HBM 경쟁이 격화되고 있다. HBM3 제품에서 주도권을 쥔 SK하이닉스가 HBM3E 수율도 가장 먼저 80% 수준으로 끌어올린 만큼 시장 장악력을 이어나갈 가능성이 커졌다.

SK하이닉스가 공개한 수율은 업계 추정치인 60~70% 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영업기밀인 수율을 공개적으로 밝혔다는 건 HBM3E 시장에서도 주도권을 쥐겠다는 자신감의 표현으로 업계는 해석하고 있다. 권 부사장은 "올해 고객사들이 가장 원하는 제품은 8단 적층 HBM3E"라며 "이런 점을 감안해 이 제품 생산에 힘을 쏟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AI 열풍으로 수요가 늘고 있는 HBM 시장을 잡기 위해선 수율을 끌어올리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HBM 시장 주도권을 놓고 메모리 반도체 기업간 각축전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SK하이닉스를 따라잡기 위해 대규모로 'HBM 태스크포스(TF)'를 꾸린데 이어 전날 반도체 수장을 전영현 부회장으로 전격 교체하는 등 분위기 쇄신에 나섰다. 업계에선 삼성전자는 HBM3E 이후 시장을 잡기 위한 특단의 대책을 내놓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글로벌 메모리 3위 업체인 마이크론도 SK하이닉스를 따라잡기 위해 투자 규모를 7000억원 정도 늘리기로 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매튜 머피 마이크론 최고재무책임자(CFO)는 "HBM 공급량을 늘리기 위해 올해 투자 규모를 75억 달러(약 10조2400억원)에서 80억 달러(10조9200억 원)로 상향 조정했다"고 밝혔다. 마이크론은 지난 2월 8단 적층 HBM3E 양산을 시작한데 이어 12단 적층 HBM3E 샘플링을 시작했다고 밝힌 바 있다.

김채연 기자 why2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