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준호의 딜 막전막후] '우공이산 M&A' 전략 빛난 LG화학
“발표를 보고 두 번 놀랐습니다. LG그룹이 해외에서 대형 인수합병(M&A)을 해냈다는 데 한 번, 바이오 회사였다는 데 또 한 번요.”(글로벌 IB 대표)

LG화학이 있는 서울 여의도 트윈타워엔 연초까지도 M&A를 중개하는 투자은행(IB) 뱅커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2차전지 자회사를 분할한 LG화학이 신사업 발굴을 위해 M&A에 나설 것이란 기대 때문이었다. 수조원의 가격표가 붙은 매물들이 LG화학 실무진의 이메일에 차곡차곡 쌓였다. LG화학은 묵묵부답이었다. 시장에선 보수적인 그룹 문화 때문에 LG화학이 대형 M&A를 기피한다는 수군거림이 나왔다.

하지만 이 무렵 LG생명과학 마곡 연구단지엔 늦은 밤까지 불이 꺼지지 않았다. 이지웅 상무 등 LG화학 M&A 담당과 LG생명과학 인력을 포함한 10여 명은 2019년 극비리에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 2017년 LG화학이 LG생명과학을 흡수합병한 지 2년여 만이었다. 합병 이후 연구인력 영입과 기존 제약 파이프라인 점검에 집중해온 LG화학은 바이오 재건의 마지막 퍼즐을 글로벌 M&A를 통한 해외시장 재진출로 정했다.

바이오 재건 마지막 단추

공개 매물 대신 TF가 수백 곳의 기업을 하나씩 검토하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궁금한 사안은 회사에 직접 이메일을 보냈다. 신약개발에 의존하는 회사는 배제됐다. 미국에서 FDA 승인을 얻어 상업화에 성공한 회사들로 리스트를 추렸다. 이런 회사를 1조원 미만 가격에 인수한다는 것은 ‘우공 가족이 산을 옮기는 것(우공이산)’만큼이나 외부 시각으론 답답한 일이었다.
LG화학 생명과학사업본부 직원들이 신약 연구를 하고 있다.  LG화학  제공
LG화학 생명과학사업본부 직원들이 신약 연구를 하고 있다. LG화학 제공

연구 중심 문화 유지 '약속'

인수 후보는 지난해에서야 최종 세 곳으로 좁혀졌다. 격론 끝에 미국의 바이오 벤처기업인 아베오가 타깃으로 결정됐다. LG화학은 아베오가 현지에서 FDA 승인을 받은 신장암 치료제 ‘포티브다’만으로도 올해 약 155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5년 후엔 5000억원의 매출을 달성할 것으로 예상했다. 기존 현금 흐름으로 약 8000억원의 기업가치는 충분히 정당화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아베오가 구축한 판매망을 LG화학이 출시할 신약 유통에 활용하면 시너지도 분명하다고 판단했다.

협상 돌입 후에도 고비는 계속됐다. 자존심이 강한 바이오 핵심 인력들이 글로벌 제약사 대신 LG화학을 선택할지 미지수였다. 거래 막바지엔 글로벌 제약사 한 곳이 아베오 인수에 뛰어들었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경매식 입찰로 분위기가 바뀌면서 2년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 위기였다.

아베오는 2010년 미국 나스닥시장에 상장했지만 2012년 FDA 승인에 실패하고 소송까지 겹치며 존폐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포티브다가 지난해 극적으로 FDA 승인을 따내며 재건을 앞둔 상황이었다. LG화학은 연구진 중심의 회사 문화를 존중하면서 재정 지원을 아낌없이 할 수 있는 인수자임을 강조했다. 신학철 부회장 지시로 주요 인력이 미국 현지에서 아베오 임직원과 유대를 쌓았다. LG화학이 사업성이 떨어진다는 비판 속에서도 배터리사업을 글로벌 1위로 키운 ‘뚝심’이 아베오 경영진을 움직였다. 결국 아베오 이사회가 LG화학의 제안을 수락하면서 창사 이후 최대 규모이자 첫 번째인 바이오 M&A에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