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 미사일과 새벽잠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환담장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우리 때문에 대통령께서 NSC(국가안전보장회의)에 참석하시느라 새벽잠을 많이 설치셨다는데 새벽에 일어나는 게 습관이 되셨겠다"면서 "대통령께서 새벽잠을 설치지 않도록 내가 확인하겠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앞으로 발 뻗고 자겠다"고 화답했다.

김 위원장은 "대결의 종지부를 찍자"며 서울 방문도 약속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지켜지지 않았다.

당시 야당인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논평대로 4ㆍ27 판문점 선언은 결과적으로 '위장 평화쇼'였다.

최근 북한의 미사일 도발은 발사 장소가 평양, 평안남북도, 자강도, 강원도 등 거의 전국적일 뿐 아니라 발사 시각도 제각각이다.

지난달 25일에는 오전 6시53분, 28일에는 오후 6시20분, 29일에는 저녁 8시50분, 이달 1일에는 오전 6시45분, 4일에는 오전 7시23분, 6일에는 오전 6시1분, 그리고 9일에는 새벽 1시48분이었다.

대부분 이른 아침이고 새벽 2시를 전후해 발사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군사전문가들은 '북한이 언제 어디서든 기습 공격을 할 수 있음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4년여 전 새벽잠 대화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9일 새벽 1시48분 발사 때 윤석열 대통령이 곧바로 NSC를 주재했다면 새벽잠이 아니라 밤을 거의 꼬박 새워야 했을 것이다.

김정은이 문 전 대통령에게 한 '새벽잠' 발언은 아이스브레이킹(분위기 풀기용 대화)이었을 것으로 본다.

하지만 북한이 정말 그렇게 믿고 있다면? 자신들이 미사일을 발사할 때마다 남한에 초비상이 걸려 대통령이 황급히 NSC를 주재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말이다.

북한군 수뇌부 입장에서는 '남한 대통령 골탕이나 한번 먹이자'고 의도적으로 새벽 이른 시간대에 발사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다행히(?) 윤 대통령은 북한의 의도에 말려들지 않았다.

당일 오전 대통령실이 낸 보도자료를 보면 "우리 군은 북한의 단거리 탄도미사일 2발 발사를 포착하였습니다.

국가안보실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관련 내용을 즉시 보고하고, 김성한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긴급 NSC 상임위원회를 개최하여 합참으로부터 상황을 보고받고 대응 방안을 논의하였습니다"라고 돼 있다.

김 실장 주재 NSC는 미사일 발사 후 4시간 만인 아침 6시께 열렸고, 윤 대통령은 참석하지 않았다.

지난달 25일 이후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7차례나 있었다.

그 기간 윤 대통령이 직접 NSC에 참석한 것은 지난 4일 북한이 중거리탄도미사일(IRBM)을 발사했을 때 회의 중간에 들른 것뿐이라고 한다.

시도 때도 없이 미사일을 발사하는 데 매번 대통령이 NSC를 주재할 필요가 있느냐는 반론이 있을 것이다.

모든 상황이 시시각각 대통령에게 보고될 것으로도 믿는다.

하지만 상황이 생각보다 위중하다.

전술핵 사용 초읽기에 들어간 우크라이나 전쟁,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 전망 등 국제정세가 그 어느 때보다 뒤숭숭한데 북의 미사일 발사는 전례 없이 빈번하고 위협적이다.

발사 징후를 우리 군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저수지에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쏜 것도 확인됐다.

경제가 위기인데 안보마저 불안한 상황이다.

대통령이 NSC를 주재하고 안보를 직접 챙기는 모습을 지금보다 자주 보게 된다면 국민의 불안감이 조금은 덜어지지 않을까.

국정 지지율 회복에도 해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2019년 7월 자유한국당 민경욱 대변인은 북한이 탄도 미사일을 발사했을 때 문 전 대통령이 NSC를 주재하지 않은 것을 비난하며 "퓨마 탈출 때도 열었던 NSC도 열지 않고 일본에만 집중포화를 하고 있다"고 했다.

2018년 9월 19일 평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 첫날 대전의 한 동물원에서 퓨마가 우리 밖으로 나오자 NSC 산하 위기관리센터가 직접 포획 작전을 지휘했던 것을 빗댄 것이다.

지난 3월 청와대와 민주당은 윤 대통령 당선인이 집무실 용산 이전 계획을 발표하자 "안보 공백과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반대했다.

그러자 국민의힘은 "북한이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을 때도 NSC에 참석하지 않았던 문 대통령이 안보를 거론할 자격이 있느냐"고 받았다.

퓨마 탈출 소식은 아직 없다.

윤 대통령이 NSC를 너무 뜸하게 주재하는 것 아니냐는 야당의 비판도 들리지 않는다.

대신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한미일 합동 군사훈련을 "친일 국방"이라고 비난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