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에 성공했는데, 아이를 낳았다는 이유로 모든 걸 포기해야 하나요.”(배유진·32·미혼·중소기업 사무직)

“남자가 육아휴직을 썼다가 공공연하게 불이익을 당한 경우를 너무 많이 봤어요. 대기업에서조차 육아휴직을 쓸 수 없는 구조입니다.”(정진우·30·기혼·대기업 직원)

2030세대에게 출산을 기피하는 이유를 묻자 나온 대답이다. 한국경제신문은 저출산 대책에 매년 수십조원의 예산이 들어가는데도 출산율이 떨어지는 이유와 대책을 듣기 위해 2030세대 남녀 다섯 명과 좌담회를 열었다. 한마디로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 힘들다”는 게 이들의 불만이었다. 정부가 도입하기로 한 ‘부모 급여 100만원’에 대해서도 “출산 결정을 좌우할 정도는 아니다”는 지적이 나왔다. 좌담회는 지난 3일 서울 중림동 한경 회의실에서 열렸다.

2030이 출산 꺼리는 이유는.

▷배유진=“2개월 뒤 결혼하기로 한 예비남편과 아이를 낳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직하며 여러 직장을 다녀봤는데, 출산과 육아로 경력이 단절되는 직장 선배와 친구들을 너무 많이 봤거든요. 중소기업에선 여성이 육아휴직을 쓰면 원래 직장으로 복직하지 못한 채 저임금 노동자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아요. 복직해도 원래 하던 일을 못 하거나 직급이 낮아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직장인, 전문직, 프리랜서 등으로 일하는 2030세대 남녀 다섯 명이 지난 3일 한국경제신문사 회의실에서 저출산 원인과 대책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이들은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 힘든 게 현실”이라고 했다. 왼쪽부터 강현일(37·가명), 한민정(30·가명), 김별(29), 배유진(32), 정진우 씨(30). 김병언 기자
직장인, 전문직, 프리랜서 등으로 일하는 2030세대 남녀 다섯 명이 지난 3일 한국경제신문사 회의실에서 저출산 원인과 대책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이들은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 힘든 게 현실”이라고 했다. 왼쪽부터 강현일(37·가명), 한민정(30·가명), 김별(29), 배유진(32), 정진우 씨(30). 김병언 기자
▷정진우=“대기업도 마찬가지예요. 저는 아내와 딩크족(자녀 없는 맞벌이부부)으로 살기로 했습니다. 아내는 육아휴직 제도가 보장된 대기업에 다니는데, 그러면 뭐하나요. 1년 휴직하고 돌아오는 순간 육아휴직을 안 쓴 남성 동료에게 무조건 승진이 뒤처지고 변두리 부서만 돌게 되는데요.”

▷김별(29·기혼·요가 강사)=“프리랜서는 육아휴직 제도 자체가 없어요. 게다가 저는 요가 강사라 임신하는 순간 경력단절은 물론 육아를 마칠 때까지 생계가 완전히 끊기게 돼요. 남편도 웹툰 작가로 일하는 프리랜서인데, 직장인이 육아휴직 때 받는 급여만큼을 1년이라도 보장받는다면 아이를 낳을 수 있겠다는 얘기를 많이 합니다.”

▷한민정(가명·30·기혼·감정평가사)=“원래 두 명은 꼭 낳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작년에 첫째를 낳고 일과 육아를 병행해 보니 도저히 둘째는 못 낳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육아휴직으로 인한 업무역량 저하는 제가 감내해야겠지만 정말 문제는 육아휴직에서 복직한 뒤예요. 누가 아이를 보살펴주나요. 저도, 남편도 야근과 휴일 근무가 많아 매일 어린이집 마치는 시간에 아이를 데리러 가기 힘들거든요. 첫째 아이를 돌봐주시기 위해 결국 부모님이 모두 일을 그만두셨습니다.”

▷강현일(가명·37·기혼·금융사 직원)=“저와 아내는 (아이 때문에) 아예 집을 부모님 댁 옆에 마련했어요. 우리 부부는 둘째까지 낳기로 했는데, 부모님 도움을 받을 수 없다면 절대 둘째까지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출산 늘리려면.

▷배유진=“베이비시터는 하루 4~5시간 고용해도 월 150만원이 든다고 합니다. 그나마 이건 공식적인 금액이고 각종 수당과 명절 선물도 줘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정진우=“조선족과 중앙아시아 출신 베이비시터는 월 200만원 안팎인데, 한국인을 고용하려면 최소 한 달에 400만원은 들여야 해요. 수당 등 추가 비용은 별도고요. 이렇게 비용이 비싼 건 수요에 비해 인력이 제대로 공급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 아닌가요. 고령 은퇴자를 베이비시터로 재교육해 보육시장에 적극 공급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민정=“남성 육아휴직이 의무화되면 둘째를 낳을 것 같아요. 남편은 공공부문에서 일하는데도 육아휴직을 쓰면 무조건 승진에서 밀려요. 저도 그걸 바라지 않기 때문에 남편에게 육아휴직을 써달라고 말을 못 합니다. 부부가 1년씩 번갈아가면서 육아휴직을 쓸 수 있다면 여성도 훨씬 편한 마음으로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배유진=“회사에서 모두 경쟁하는데, 남성은 육아휴직을 안 쓰고 여성에게만 육아를 강요하는 건 공정하지 않아요. 아이는 반드시 엄마가 키워야 한다는 의식 자체를 바꾸려면 육아휴직 의무화가 필요합니다.”

▷정진우=“지금은 남성이 육아휴직을 잘 쓰지 않기 때문에 여성도 육아휴직을 쓰려면 눈치를 볼 수밖에 없어요. 과격하더라도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려면 육아휴직 의무화가 필수라고 봅니다.”

▷강현일=“육아휴직이 아니라 출산휴가만 써도 ‘네가 애 낳았냐’는 핀잔을 듣기 일쑤인데 육아휴직은 꿈도 못 꾸죠. 육아휴직을 쓴 남성 비율이 높은 기업에 정부가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주는 방법도 좋을 것 같습니다.”

부모 급여에 대한 생각은.

▷김별=“이 금액이 계속 늘어나면 아이를 낳겠다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배유진=“저는 별로 와닿지 않았어요. 아이를 못 낳는 이유가 돈 때문만은 아니거든요. 돈이 아니라 아이를 돌볼 수 있는 환경이 훨씬 중요합니다.”

▷한민정=“바람직한 제도라고 보지만 출산 결정을 좌우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