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왕국' 재건 노리는 인텔…"무어의 법칙은 살아 있다"
미국 반도체 기업 인텔은 한때 반도체 제조업체로는 전 세계 1위였다.

고든 무어가 1960년대 설립한 인텔은 1993년 PC용 펜티엄 중앙처리장치(CPU)를 생산하면서 반도체 업계 매출 1위로 올라선 이후 24년간 왕좌를 지켜왔다.

무어는 반도체 집적회로의 성능이 약 2년마다 2배로 증가하는 대신 비용은 절반으로 떨어진다는 이른바 '무어의 법칙'을 예측했다.

반도체 업계의 정설로도 여겨졌던 이 법칙에 따라 인텔은 전 세계에서 가장 집적도 높은 반도체를 개발해 왔다.

그러나 인텔의 쇠락과 함께 이 법칙도 사실상 옛말이 됐다.

인텔은 PC용 프로세서 부문에서는 여전히 강한 모습을 보이지만 반도체 개발 속도 면에서는 이미 대만의 TSMC나 삼성전자에 역전당했다.

TSMC와 삼성전자는 5나노미터(10억분의 5m) 트랜지스터를 가진 프로세서를 생산할 수 있지만, 인텔은 10나노미터 또는 7나노미터 기술에 묶여 있다.

여기에 수년 전부터 중앙처리장치(CPU)를 대신한 그래픽처리장치(GPU)가 주목받으면서 인텔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엔비디아와 AMD가 GPU 시장 선점에 나섰기 때문이다.

인텔은 10여년 전부터 GPU 개발을 시도해 왔으나, 이렇다 할 제품을 내놓지 못했다.

27일(현지시각) 미 캘리포니아 새너제이에서 열린 '인텔 이노베이션'에서 팻 겔싱어 최고경영자(CEO)는 "무어의 법칙은 여전히 살아 있다"고 말했다.

겔싱어의 말은 불과 며칠 전 정반대로 말한 엔비디아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의 언급과 대조를 이뤘다.

'반도체 왕국' 재건 노리는 인텔…"무어의 법칙은 살아 있다"
황 CEO는 지난 21일 "무어의 법칙은 완전히 끝났다"며 "비슷한 비용으로 두 배의 성능을 기대하는 건 옛일이 됐다"고 했다.

칩 설계가 복잡해지고 반도체 원재료인 실리콘 웨이퍼가 비싸지는 등 비용이 크게 올랐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한 개의 칩에 더 많은 트랜지스터를 넣어야 하지만, 트랜지스터가 너무 작아져서 물리적으로 한계도 있다.

그러나 겔싱어는 "보통 한 노드 적용에 2년이 걸리지만, 우리는 4년간 5개 공정 적용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예정대로 진행 중"이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인텔은 이날 PC용 프로세서 신제품 13세대 코어 프로세서를 공개하며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칩"인 '코어 i9-13900K'를 소개했다.

또 엔비디아가 80%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GPU 시장에도 뛰어들었다.

PC용 그래픽카드인 '아크 A770 GPU'를 선보인 것이다.

329달러부터 시작하는 이 GPU는 정확한 성능 차이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최근 엔비디아가 출시한 최고 성능 GPU(RTX 4090·1천599달러)보다 가격이 크게 낮다.

인텔은 다양한 반도체 업체와의 협력을 통한 생태계 확장, 소프트웨어 역량 강화 등도 발표했다.

겔싱어 CEO는 지난해 1월 위기의 인텔의 구원투수로 긴급 투입됐다.

2020년 1월 임명된 밥 스완 CEO에 1년여 만에 경질되면서 영입됐다.

18세 때 엔지니어로 입사해 최고기술책임자(CTO)까지 올랐다가 2009년 다른 회사로 옮긴 이후 10여년 만의 귀환이었다.

그리고 이번 행사는 그가 CEO가 된 후 두 번째 행사였다.

올해 61살인 그는 반소매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무대에 올라 1시간 넘게 행사를 이끌었다.

"무어의 법칙은 살아 있다"는 말이 정설로 여겨졌을 때처럼 인텔이 반도체 왕국의 모습으로 재건할 수 있을 지 관심을 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