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간 거래(B2B) 시장에서의 식자재 유통은 디지털 대전환(DX) 전쟁이 한창인 국내 유통시장에서 유독 눈길을 끄는 분야다. 연간 55조원 규모 거대 시장의 DX를 대기업이 아니라 스타트업이 이끌고 있어서다.

이는 전체 거래의 90%를 지역 밀착형 중소 유통회사가 장악한 B2B 식자재 시장의 독특한 구조가 초래한 결과다. 막강한 자본력으로 무장한 식품 대기업들도 무주공산이던 이 시장에 눈독을 들이는 분위기다.

14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B2B 식자재 유통시장의 DX는 자영업자들이 운영하는 식당의 비용 관리 부문 디지털화부터 이뤄지고 있다. 2020년 8월 식자재 비용관리 앱 ‘도도카트’를 선보인 스타트업 스포카는 이 분야의 선두주자다.

이 앱은 외식업 종사자들이 입력한 식자재 명세서를 분석해 리포트 형태로 정보를 제공한다. 자영업자들이 식자재 구입 명세서를 촬영·등록하면 앱이 종류와 수량, 주문 일자, 납품업체들을 정교하게 분류한다. 매장에서 사용한 식자재의 양과 가격 변화, 거래처 변화 등의 정보도 자영업자에게 제공한다.

취급하는 식자재 수가 많은 식당일수록 이런 서비스에 대한 욕구가 크다. 스포카가 2020년 8월부터 올해 1월까지 도도카트 이용 점주들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서비스를 이용하는 음식점은 한식당이 29%로 가장 많았다. 메뉴 및 반찬 수가 일식, 중식, 서양식에 비해 많아 스마트한 식자재 관리의 수요가 높은 것으로 풀이된다.

B2B 식자재 분야의 DX는 라스트마일 배송서비스로도 확대하고 있다. 자영업자들이 납품업체에 대한 선택권을 강화하고, 배송에 들이는 시간을 절약해 업무 효율성을 높이도록 하려는 목적이다.

리테일영의 식자재 주문 플랫폼 ‘푸드팡’은 점주들이 앱으로 필요한 식자재를 주문하면 서울과 부산의 도매시장에서부터 식당까지 무료로 새벽배송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중간 유통 과정 없이 도매시장에서 직배송되는 만큼 가격도 합리적”이라는 것이 업체 측 설명이다. 도도카트도 지난해 말 선보인 ‘거래처 찾기’ 서비스를 통해 농산물, 수산물, 축산물은 물론 포장 용품, 가공·반조리식품 등 다양한 식자재 유통업체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식품 대기업들은 이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높게 평가해 관련 스타트업 투자를 늘리고 있다. CJ프레시웨이는 B2B 식자재 유통 전문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를 제공하는 마켓보로에 403억원을 올 6월 투자했다.

마켓보로는 식자재 SaaS ‘마켓봄’과 식자재 직거래 오픈마켓 ‘식봄’을 운영 중이다. 마켓봄은 국내 식자재 유통 SaaS 1위로, 6월까지 누적 거래액이 2조원에 달한다.

CJ프레시웨이는 마켓보로와의 협업으로 식자재 유통 빅데이터 분석 모델을 지속해서 고도화한다는 구상이다. 이를 통해 B2B 식자재 유통시장을 한 단계 진화시키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CJ프레시웨이 관계자는 “마켓보로에 대한 투자를 B2B 식자재 유통시장의 DX를 주도하는 교두보로 활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경 기자 capit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