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우람,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서 10년 만에 전시…내년 2월 말까지
폐품에 금속기계로 생명을 불어넣다…최우람 개인전 '작은 방주'(종합)
움직임과 서사를 가진 '기계 생명체(anima-machine)' 제작으로 유명한 작가 최우람(52)이 6년 만에 국내에서 개인전을 열고 신작을 선보인다.

국립현대미술관(MMCA)은'MMCA 현대차 시리즈 2022: 최우람- 작은 방주'를 9일부터 내년 2월 26일까지 서울관에서 개최한다고 7일 밝혔다.

최우람 작가가 2013년 서울관 개관 '현장제작 설치 프로젝트'로 거대한 기계 생명체 '오페르투스 루눌라 움브라'를 선보인 이후 약 10년 만에 돌아온 서울관 전시다.

작가의 국내 개인전은 2016년 대구미술관 이후 6년 만이다.

폐품에 금속기계로 생명을 불어넣다…최우람 개인전 '작은 방주'(종합)
김경란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이번 전시는 방향 상실의 시대라는 격랑을 헤쳐나가야 하는 우리의 모습을 투명하게 바라보고 위로를 건네며 진정한 공생을 위해 자신만의 항해를 설계하고 조금씩 나아가기를 응원하는 진심을 담았다"고 소개했다.

이번 전시 작품들은 폐종이박스와 지푸라기, 방호복 천, 폐차의 부품 등 일상에서 버려진 흔한 소재에 금속기계를 접목해 생명을 불어넣은 것이 특징이다.

설치와 조각 12점, 영상과 드로잉 37점 등 모두 53점을 선보이며 4점을 제외하고는 모두 이번 전시를 위해 제작한 신작이다.

폐품에 금속기계로 생명을 불어넣다…최우람 개인전 '작은 방주'(종합)
대표작은 전시 제목으로 삼은 '작은 방주'로 5전시실에 전시됐다.

세로축이 12.7m에 이르는 이 작품은 '등대', '두 선장', '닻' 등의 오브제와 함께 설치돼 '방주의 춤'을 다각도로 설명하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질문한다.

검은 철제 프레임에 좌우로 35쌍의 노를 장착하고 노의 말미에 흰색을 칠한 폐종이상자가 도열한 큰 배 또는 '궤'(櫃)의 모습을 갖췄다.

닫힌 상태에선 높이가 2.1m에 이르는 궤 모양을 유지하다가 흰 벽처럼 접어 둔 노를 높이 들어 올리면서 '방주의 춤'을 시작한다.

흰 종이 노가 서서히 올라가며 군무가 시작되고, 노의 앞뒤가 바뀌면서 흑백의 물결이 출렁이는 장면은 부조리극의 일부와 같다.

폐품에 금속기계로 생명을 불어넣다…최우람 개인전 '작은 방주'(종합)
'방주의 춤'은 약 20분간 음악에 맞춰 진행된다.

길을 안내해야 할 등대가 방주에 실려 기능을 잃었고, 앞뒤로 비추던 불빛은 어느 순간 나란히 한 곳을 비추며 사람의 눈 모양을 갖춰 '빅브라더'처럼 보인다.

선장 2명도 등을 맞대고 앉아 서로 반대 방향을 가리킨다.

뱃머리 장식(선수상)도 방주가 아닌 전시장 천장에 매달렸다.

선수상은 바다의 신과 맞서는 맹수가 아닌 축 늘어진 천사의 모습이다.

배 앞쪽 전시장 벽면에 상영된 영상에선 문이 계속 열리지만, 또 다른 문이 나와 출구를 찾지 못하는 상황을 보여준다.

폐품에 금속기계로 생명을 불어넣다…최우람 개인전 '작은 방주'(종합)
최우람은 지금까지 움직임이 있는 키네틱 조각에 라틴어에서 따온 의미 없는 제목을 붙여 기계 생명체의 움직임 자체를 주목하도록 했지만, 이번 신작에선 정직하게 제목을 붙였다.

그는 "과학의 발전으로 인간은 해법을 찾았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과거에 천연두나 페스트가 퍼질 때 원인을 모르고 죽었던 것처럼 팬데믹 상황을 지나면서 여전히 사회가 흔들리는 장면을 보고서 2022년에도 인류에게는 방주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방주에 누가 탈 것인지, 무엇을 실을 것인지 정하는 과정에서 차별과 선택이 일어날 것"이라며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는데 모든 것을 실을 수 없다는 게 자명하기 때문에 '작은'을 붙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작은 방주'는 지금까지 만든 작품 가운데 가장 큰 규모로, 5전시실의 공간에 맞춰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폐품에 금속기계로 생명을 불어넣다…최우람 개인전 '작은 방주'(종합)

전시실에는 '작은 방주'의 구상부터 완성하기까지 과정을 담은 36점의 '설계 드로잉'이 처음으로 공개된다.

폐품에 금속기계로 생명을 불어넣다…최우람 개인전 '작은 방주'(종합)
서울박스 전시실에는 바닥에 놓인 검은 '원탁'과 높은 천장에서 날개를 펼치고 돌고 있는 '검은 새'가 수직적 긴장 관계를 만들어 낸다.

원탁 아래에는 기계장치에 지푸라기를 감싸 사람처럼 움직이는 로봇 18개가 있다.

이들은 머리가 없으며 어깨로 원탁을 지탱하고 있다.

머리는 원탁 위에 1개만 놓였다.

로봇들은 서로 머리를 차지하려고 일어서면 원탁을 들어 머리는 반대편으로 굴러가는 상황이 반복된다.

시지프스 신화의 형벌처럼 영원한 굴레에 빠진 인간들 위로 폐지로 만들어진 검은새들은 천천히 유영한다.

폐품에 금속기계로 생명을 불어넣다…최우람 개인전 '작은 방주'(종합)
5전시실의 입구에 설치된 '하나'는 코로나19와 사투를 벌인 의료진의 방호복에 쓰인 소재 '타이벡'으로 만든 꽃이다.

기계장치를 연결해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천천히 피고 지기를 반복하는 이 작품은 의료진에 대한 헌화이자, 위기를 겪은 시대를 위한 애도의 의미라고 한다.

폐품에 금속기계로 생명을 불어넣다…최우람 개인전 '작은 방주'(종합)
이번 전시는 에이로봇, 오성테크, PNJ, 이이언, 클릭트, 하이브, 한양대 로봇공학과 등과 기술협력을 통해 완성됐다.

방향 상실의 시대에 실존과 공존을 모색하는 이번 전시 방향을 반영한 것이라고 미술관은 설명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주최하고 현대자동차가 후원하는 'MMCA 현대차 시리즈'는 2014년부터 10년 동안 매년 국내 중진 작가 1명(팀)을 지원하는 연례전이다.

첫해에는 이불 작가가 선정된 바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