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납품단가 연동제, 법으로만 강제해선 안된다
납품단가 연동제의 입법화 논쟁이 뜨겁다. 글로벌 인플레이션과 함께 우크라이나 사태로 글로벌 공급망이 불안해지면서 원자재 가격이 폭등한 탓이다. 납품단가 연동제는 원자재 가격 상승분을 납품단가에 의무적으로 반영하는 제도다. 원자재 가격은 천정부지로 오르는데 그 상승분이 납품단가에 반영되지 않으면 원청사(대기업)에 제품을 납품하는 하도급사(중소기업)는 견딜 재간이 없다. 이에 대비해 원청사와 하도급사가 자율적으로 납품단가를 조정하는 납품대금 조정협의회 제도를 두고 있다. 그런데 복잡한 절차와 원·하청기업의 소극적 참여로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면서 입법을 통해 원자재 가격 상승분을 납품단가에 의무적으로 반영하도록 하자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원청사와 하도급사 간에 납품단가를 두고 씨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14년 전 글로벌 금융위기 때로 거슬러 올라가는 해묵은 논쟁이다. 그럼에도 다시 지면을 달구게 된 것은 워낙 오른 국제 원자재 가격뿐만 아니라 국내의 정치적인 요인도 한몫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공약 사항인 데다가 매일같이 으르렁대던 여야가 모처럼 한목소리로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발 벗고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납품단가 연동제의 취지에 반대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런데 중소벤처기업부가 추진하는 방법, 즉 원자재 가격 상승분을 법을 통해 납품단가에 반영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납품단가 연동제는 기본적으로 하도급사의 잘못 없이 예기치 못한 사정으로 오른 원자재 가격을 원청기업이 보상해주는 제도다. 따라서 이 문제의 근본적 해결은 원청기업이 원자재를 직접 구입해 하도급업자에게 하청을 주는 것이다. 이 방식은 가장 완벽하게 원자재 가격 상승의 코스트를 원청기업에 전가하는 방법이지만, 한편으로는 하도급업체를 임금만 따먹도록 하는 이른바 임금노동자형 기업으로 전락시키게 된다. 즉 원자재 구입 능력은 바로 기업의 경쟁력인데,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코스트를 원청기업에 넘긴다고 이러한 방법을 쓰게 되면 하청기업은 점점 경쟁력을 잃게 되고 원청기업에 의존하는 기업으로 전락하게 된다. 이처럼 납품단가 연동제를 법으로 강제할 경우 자칫하면 더 큰 화를 부를 수도 있다.

또한 현재 중기부가 추진하고 있는 정부안은 하도급법 등 기존 법률과도 충돌한다. 정부안은 원자재 가격이 상승할 때뿐만 아니라 하락할 때도 납품단가 연동제를 적용하도록 하고 있다. 원청기업의 반발을 잠재우기 위해 하락할 경우도 포함한 것으로 보이나, 하도급법에서는 원청기업이 원자재 가격 하락을 이유로 하도급대금을 감액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이 정부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원자재 가격이 하락하는 국면에서는 중소기업이 오히려 피해를 볼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입법 기술적으로도 어려움이 많다. 수많은 업종과 원자재 중 어떤 것을 납품단가 연동제의 대상으로 할 것인지 정하기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납품단가 연동제의 취지를 살리면서 입법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고려하면 그 방법은 신중해야 한다. 좀 돌아가는 방법이기는 하지만 현재 제 기능을 못 하고 있는 납품대금 조정협의회 제도를 실효화하고,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과 관련해 S(사회) 영역에서 납품단가 연동제를 중요하게 다뤄 공시를 강화함으로써 시장의 힘에 의해 실질적으로 납품단가 연동제가 작동하도록 하는 것이 최선의 길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