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인드 인터뷰

"내년 경기 침체보다 더 무서운 게 올 수도"
기업 부도 사태 직면할 수도…어느 때보다 자금 여력 중요
[마켓PRO]"내년 암호화폐·바이오·부동산 시장 부도기업 늘어날수도"
"글로벌 공급망 불안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인플레이션 등 대내외 불확실성이 언제 끝날지 기약이 없습니다. 만약 미국 중앙은행(Fed)이 또다시 '자이언트 스텝'(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밟게 되면 경기 침체보다 더 암울한 상황이 올 가능성이 있습니다."

최근 한 증권사 투자은행(IB) 사업부 매니저이자 애널리스트 출신인 A씨는 기자에게 이같이 말했다. 시장에선 가파른 기준 금리 인상에 따른 글로벌 경기침체를 기정사실화하고 있지만, A씨는 이보다 더 큰 기업 부도 사태에 직면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지난 몇 년간 풍부한 유동성으로 호황을 누렸던 가상자산(암호화폐), 바이오, 부동산시장이 큰 조정을 겪을 것으로 보고 있다.

가파른 금리 인상을 예고한 제롬 파월 Fed 의장의 강한 매파적 발언에 경기 침체 우려가 점차 현실화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시중에 풀린 유동성이 회수되면서 곳곳에서 경고음까지 들린다. 풍부한 유동성이 견인한 가치 상승은 현금의 위력이 약해지면서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고 있는 것.

유동성 역습 대비해야…가상자산·바이오·부동산 위기감

A씨는 내년은 유동성 역습을 대비해야 하는 시기가 될 것이라고 조언한다. 이젠 코로나19 이후 불어났던 유동성이 축소되면서 나타날 자산시장 거품 붕괴에 대비해야 한다는 의미다. A씨는 "투자자들은 그동안 시장이 과대평가 됐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면서 "공급망 불안 등 대내외 악재 속 미 Fed가 하반기 자이언트 스텝을 밟게 되면, 경기 침체를 넘어 기업들의 디폴트 사태까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이후 풀린 돈은 여러 자산시장에 흘러 들어가 버블(거품)을 일으켰다. 국내에선 대표적으로 암호화폐, 부동산, 바이오 등이 꼽힌다. A씨는 "유동성 위기에 몰려 돈을 갚지 못한 기업들을 결국 부도처리 된다"며 "각 시장(암호화폐·부동산·바이오)에서 주요 기업 중 어느 한 곳이라도 무너지면 연쇄적인 자금난과 신용 경색으로 흑자기업까지 도산 위기에 내몰릴 수 있다"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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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바이오 업계에선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지난해부터 이어지고 있는 주가 폭락의 여파가 심상찮다. 회사채 만기로 현금을 상환해야 하는 기업들은 노심초사하는 모습이다. 과거 1~2년 전 발행한 전환사채(CB)의 조기상환 기간이 도래하면서 풋옵션을 행사하는 사채권자가 늘고 있기 때문. 통상적으로 전환사채는 발행 뒤 1~2년이 지난 시점부터 사채권자의 풋옵션 행사가 가능하다.

만기 전 전환사채 취득이 무조건 악재는 아니다. 자금 여력이 넉넉한 기업이 전환사채를 조기상환 할 경우 재무구조가 개선될 수 있다. 다만 채권자가 주가 급락으로 보통주 전환 의미가 사라진 전환사채에 대해 원리금 상환을 요구한다면 의미는 다르다. 채권자가 만기까지 CB를 계속 보유해도 실익이 없다고 판단, 원금이라도 건지겠다고 생각한 셈이다. 채권자가 해당 기업의 미래에 대해 확신하지 못한단 의미도 내포한다.

바이오 업체들의 주가 하락이 지속될 경우 더 많은 기업이 유동성 위기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2020~2021년 CB를 발행한 바이오 기업 대부분은 주가가 대거 빠지면서 CB 전환가액이 현 주가보다 높다. 전환사채 투자자 입장에선 주식으로 전환할 이유가 사라진 것.

발행회사가 자금력이 충분치 못한 상황이라면 채권자의 조기상환 요구가 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자금이 없다면 유상증자나 채권 발행으로 빚(회사채)을 갚을 돈을 마련해야 한다. 하지만 신약 개발 등의 바이오 기업들은 현금성 자산이 늘 부족하다.

값비싼 예방주사 맞은 암호화폐…양날의 검 '유동성'

금리 인상으로 부동산 시장이 침체될 경우 부동산 기업들의 위기로도 이어질 수 있다. A씨는 "최근 중국은 부동산 시장이 경색되자 부동산 기업들의 파산 위기로 이어지고 있다"면서 "국내 부동산 시장도 점차 침체기에 접어들고 있는데, 공급은 쏟아지고 있지만 수요는 점차 줄고 있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다만 A씨는 암호화폐 시장에 대해선 값비싼 예방주사를 맞았다고 진단했다. 그는 "암호화폐 업체들이 경기 침체에 따른 '예방주사 값'을 루나와 테라 폭락 사태로 치렀다"며 "이 사태로 유동성 축소에 따른 대폭락 충격은 일부 완화했다"고 봤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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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1월 7만 달러 가까이 치솟았던 비트코인은 루나·테라 폭락 사태 이후 개당 2만 달러 안팎에 거래되고 있다. 암호화폐 시장은 지난 5월 루나·테라 폭락 사태를 시작으로 조정받고 있다.

A씨는 "풍부한 유동성은 양날의 검으로 불린다. 금리 인상 등으로 자금이 회수될 때는 돈이 몰렸던 시장부터 붕괴되기 시작한다"면서 "특히나 현금흐름을 진짜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기업이 아닌, 외부 자금을 의존하던 기업의 경우 디폴트 늪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류은혁 한경닷컴 기자 ehry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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