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25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내년 예산안과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대해 언론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25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내년 예산안과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대해 언론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30일 국무회의에서 의결한 내년도 예산안의 핵심은 24조원에 달하는 지출 구조조정이다. 통상(10조원 안팎)의 두 배 수준이자 사상 최대 규모다. 과거에도 정부는 해마다 “역대급 지출 구조조정을 하겠다”고 공언했지만, 항상 예년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올해 분위기는 달랐다. 정부 부처 내에서도 “기획재정부가 독하게 지출 구조조정을 하고 있다”고 혀를 내둘렀을 정도다.

기재부가 지출 구조조정을 늘린 건 재정 기조를 ‘확장재정’에서 ‘건전재정’으로 바꾸는 동시에 국정과제 이행과 취약계층 지원, 미래 투자 확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33조원의 재정여력 확보가 필요했는데, 문재인 정부 때 본예산 대비 연 8~9%대에 달했던 예산 증가율이 내년엔 5.2%에 그치면서 내년 예산 증가액 중 중앙정부의 실질 가용재원이 9조원에 불과한 만큼 지출 구조조정을 예년 수준의 두 배로 늘려야 했다는 것이다.

지역화폐 예산 전액 삭감

지출 구조조정 1순위는 정부가 주도하지 않고 민간에 맡겨도 되는 사업과 과거에 비해 필요성이 떨어진 사업이었다. 단순노무 공공형 노인 일자리를 줄이고, 민간이 고용을 늘릴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을 한 게 대표적이다.

지역화폐(지역사랑상품권) 지원 예산은 전액 삭감했다. 코로나19 여파로 한시적으로 국고 지원이 이뤄졌지만, 내년부터는 이를 지방자치단체 자체 사업으로 돌리도록 했다. 본예산 기준 지역사랑상품권 예산은 2021년 1조522억원, 올해 6050억원이었다. 지역사랑상품권은 지자체 내 가맹점에서 결제한 금액의 일정 비율을 할인해 현금 등으로 돌려주는 상품권으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성남시장과 경기지사 시절 의욕적으로 도입했고 문재인 정부도 국가 예산으로 뒷받침한 사업이다.

문재인 정부의 ‘한국판 뉴딜’ 사업 예산도 대폭 줄었다. 노후 학교 시설을 스마트 학습환경으로 전환하는 ‘그린 스마트 스쿨’ 조성 사업에는 982억원 삭감된 4212억원만 반영됐다. 수소전기차 보급 사업 예산도 절반 가까이 줄어든 3600억원으로 결정됐다. 수소차 수요가 많지 않아 지원 수준을 현실화했다는 설명이다. 스마트공장 구축 사업 예산은 절반 이상 줄었다.

SOC 줄이고 복지 늘리고

분야별로 보면 산업·중소기업·에너지 분야 예산이 5조6000억원(18.0%) 줄었다. 소상공인 손실보상 등 한시 지원이 종료된 결과다. 사회간접자본(SOC) 예산도 28조원에서 25조1000억원으로 2.8% 감소했다. 지방도 위험도로 개선 등 일부 사업을 지방으로 이양하면서다. 도시재생사업은 사업유형을 통폐합하고 신규 사업지를 조정하는 방식으로 예산이 8930억원에서 5960억원으로 줄었다. 문화·체육·관광 분야 예산도 9조1000억원에서 8조5000억원으로 조정됐다. 역시 일부 사업이 지자체로 넘어간 결과다.

교육 예산과 일반·지방행정 예산도 지방교육재정교부금과 지방교부금 등 국세 수입에 연동해 지방에 넘겨주는 재원과 국고채 이자 등을 빼면 올해보다 축소된다.

예산이 가장 많이 늘어나는 분야(증감액 기준)는 보건·복지·고용이다. 올해 본예산(217조7000억원)보다 8조9000억원(4.1%) 늘어난 226조6000억원이 배정됐다. 국방 예산은 전년 대비 2조5000억원(4.6%) 늘어난 57조1000억원이었다. 연구개발(R&D) 예산은 9000억원(3.0%), 환경 분야 예산은 5000억원(3.9%), 농림·수산·식품 분야 예산은 6000억원(2.4%) 늘었다.

‘방만 재정’ 브레이크

정부 안팎에선 내년 예산안이 문재인 정부 5년간 이어진 ‘초확장재정’의 고리를 끊는 계기가 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출범 첫해부터 건전재정 기조로의 전환을 위해 긴축 예산을 짜고 고강도 구조조정에 나섰다는 점에서다. 문재인 정부는 임기 중 연평균 8.7% 수준의 재정 확장을 했고, 그 결과 국가채무는 2017년 660조2000억원에서 올해 1068조8000억원(2차추경 기준)으로 불어났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이 기간 36%에서 50%로 높아졌다. GDP 대비 재정적자(관리재정수지 기준) 비율은 2017년 1.0%에서 올해 본예산 기준 4.4%, 추가경정예산 기준 5.1%로 악화됐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