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의 한 공인중개사 사무소 유리창에 전세 매물이 넘쳐나고 있다.  /뉴스1
서울 강남구의 한 공인중개사 사무소 유리창에 전세 매물이 넘쳐나고 있다. /뉴스1
아파트 시장에서 역전세난이 벌어지고 있다. 거래 절벽이 이어지면서 집주인들이 급매물을 전세로 돌리고 있는데다 가팔라진 금리 인상에 대출 이자가 부담스러워진 세입자들은 전세 보다 월세를 선호하고 있어서다. 새 세입자를 찾지 못해 전 세입자에게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집주인들도 늘고 있다.

25일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에 따르면 이날 기준 서울의 아파트 전세 물량은 3만4173건으로 집계됐다. 이달 들어서만 2215건(6.9%) 증가했다. 1년 전인 지난해 8월25일(2만1511건)에 비해선 58.8%(1만2662) 급증했다. 최근 2년간 서울 아파트 시장에서 3만5000건에 육박하는 전세 물량이 쌓인 건 처음이다.

당초 시장 안팎에선 올 8월 임대차2법(계약갱신청구권·전월세상한제) 도입 2년차를 맞아 전세난이 불거질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집주인들이 그간 제대로 올리지 못한 보증금을 한꺼번에 올리면서 세입자들의 혼란이 가중될 것이란 관측이었다.

하지만 시중금리가 예상보다 빠르게 뛰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한국은행은 이날 기준금리를 연 2.25%에서 연 2.50%로 인상했다. 지난달 빅스텝(한 번에 0.50%포인트 인상)을 포함해 사상 첫 4연속 금리 인상 결정이다. 금리 인상으로 전세대출 이자가 빠르게 뛰면서 금융비용 부담이 커진 수요자들이 월세를 선호하게 됐다.

서울 공덕동에 있는 한 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계약 만료를 앞두고 이사를 예정한 현재 세입자에게 줄 보증금을 마련해야 하는데 새 세입자를 찾지 못해 급전세 매물을 내놓고 집주인들이 늘고 있다"며 "전세난이 아니라 역전세난 우려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집 값 고점 인식 확산까지 맞물려 '거래 절벽'이 이어지면서 매매가 쉽지 않은 급매물 역시 전세 시장에 유입되고 있다. 전세 수요자가 '귀한' 상황이 계속되자 전세값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 서울 아파트의 평균 전세값은 올 5월엔 6억3337만원이었는데 6월엔 6억3315만원, 7월엔 6억3249만원으로 하락했다. 서울 아파트의 평균 월세 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서울 뿐만이 아니다. 경기에선 입주 물량까지 늘면서 역전세난이 심화하는 모습이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경기엔 올 3분기에만 1만 가구 이상의 입주가 예정돼 있다. 지난달 1만970가구에 이어 이달 1만1938가구, 다음달엔 1만3801가구가 입주하게 된다. 입주가 집중된 지역에선 보증금을 낮춘 전세 물량들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이달 말 입주 예정인 경기 수원 팔달구에 있는 힐스테이트푸르지오 수원이 대표적이다. 총 2586가구 규모로 전용면적 84㎡ 기준 전셋값이 4억원대 중반으로 형성돼 있었다. 그런데 최근엔 3억원대 중후반까지 낮아진 전세 물량들이 나오고 있다.

전세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사례도 증가세다. HUG(주택도시보증공사)에 따르면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해 HUG가 대신 갚아준 금액은 올 1분기 1374억원에서 2분기 1572억원으로 14.41% 증가했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