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입체적' 정부조직 구성 시급하다
윤석열 정부 출범 100일이 지났다. 기업에서는 인수합병(M&A) 등 새 출발 시 100일 내로 통합 작업을 완수해야 성공한다는 말이 있다. 그래야 조기에 직원은 물론 고객, 협력사 등 이해관계자들과 비전 및 전략적 방향을 공유해 신속한 성과 창출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정부도 다를 바 없다. 100일의 의미는 그만큼 크다고 할 수 있다. 새 정부가 성공하려면 하루빨리 국민이 신뢰하고 안심할 수 있는 정책 제시로 국정 동력을 회복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정확한 상황 인식이 중요하다. 현재는 미증유의 글로벌 복합 상황이다. 미국과 대만 일본 한국의 반도체 동맹인 ‘칩(Chip)4’ 이슈는 경제·산업 분야는 물론 정치·외교·안보 문제와도 얽혀 있다. 글로벌 공급망 교란 등 공급 위기가 경제 침체 등 수요 위기와 동시에 발생하고 있고, 국내외 산업·기술·통상·금융·경제 문제도 서로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우리가 당면한 위기와 기회는 이렇듯 글로벌 복합 상황에 기인하고 있어 해법도 글로벌 시각을 통해 찾아야 한다.

지난 수년간 우리 정부의 경제 정책은 늘 선거 표에 입각한 정치 논리에 밀려 글로벌 시각보다 국내 시각에 치우친 감이 많았다.

이제 미·중 무역·기술·자원 패권전쟁, 세계적 스태그플레이션 위기 등에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삐끗하면 천길 낭떠러지다. 당면한 복합적 글로벌 문제에 정통한 전문성과 통섭 역량을 가진 각계 인재들이 참여하는 글로벌 시각의 복합적인 정책 혁신이 시급하다.아울러, 정부 조직과 의사결정 및 실행 구조가 중요하다. 국가 전략·정책이 바뀌면 이를 수행하는 정부 조직도 바뀌어야 한다.

우리 정부 조직은 전통적으로 기획재정, 외교, 국방, 산업, 교육 등 기능 중심의 날줄(세로줄) 조직이다. 과거에는 이런 조직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러나 국내외 환경이 급변하면서 많은 연관 부처가 참여해야 해결 가능한 복합적인 과제가 산적해 있다.

기능 중심의 날줄 조직에 당면 과제 중심의 씨줄(가로줄) 조직을 추가해 과제 실행력을 결합한 매트릭스 조직이 효과적 대안일 수 있다. 단기적으로 정부조직법 개정 없이도 대통령 비서실과 국무조정실, 대통령·총리 직속 위원회 개편을 통해 과제·미션 중심의 조직 운영이 가능하다. 유명무실한 각종 위원회는 과감히 정리하고 미·중 갈등의 포괄적 대응 등을 위한 경제안보 조직, 시급한 저출산 대응 조직 등을 빨리 꾸려야 한다.

이런 정부 정책·조직 운용은 세계적 추세다. 미국은 국가 핵심 아젠다는 백악관 주도로 연관 부처가 모두 참여해 실행하고 있다. 날줄 씨줄의 매트릭스 조직을 가동하고 있는 것이다.

조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 강력히 추진하고 있는 도로, 철도, 통신, 에너지, 교육 등 대대적 인프라 혁신을 위한 미국재건계획(Build Back Better Plan), 중국과의 패권전쟁을 이기기 위한 반도체, 배터리 등 핵심 분야에서의 미국 주도권 확보 및 중국 견제 정책이 대표적 사례다. 유럽연합(EU)도 당면 과제 해결을 위한 ‘미션 중심적 정책’을 확대하고 있다. 세계적 경제학자인 마리아나 마추카토 교수가 ‘EU의 미션 지향적 연구·혁신’ 보고서와 신간 <미션 경제>에서 제시한 미션 중심적 해법이 그 기반이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EU 차원의 강력한 탄소중립 정책, 디지털 경제 구현과 데이터 인프라 구축을 위한 ‘가이아-엑스(Gaia-X)’ 프로젝트가 좋은 사례다.

우리나라도 사실상 전 부처 참여가 필요한 복합적 당면 과제 해결을 위해 개별 부처 중심이 아니라 연관 부처가 ‘원팀’으로 협력하는 정부 정책·조직 혁신이 시급하다. 작금의 중차대한 국내외 상황은 촌각을 다투는 기민한 대처가 필요하다. 새 정부 100일을 계기로 일대 혁신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