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매월 생산량을 늘리고 있는 현대자동차가 ‘불량 반도체’라는 악재를 만났다. 세계 1위 차량용 반도체 회사인 독일 인피니언의 제품 불량이 현대차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돼서다. 글로벌 차량용 반도체 공급난이 서서히 풀리고 있어 하반기 생산을 늘릴 계획이었지만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업계 분석이다.
[단독] '불량칩 대란' 아이오닉 5…출고 더 지연되나

○2개월치 파워모듈 칩 공급 차질

인피니언은 반도체 칩(IGBT)과 이 칩을 넣은 파워모듈을 현대모비스에 납품하고 있다. 현대모비스는 이 모듈로 PE(파워일렉트릭) 시스템을 조립하고, PE 모듈로 만들어 현대차에 공급한다. 이 PE 모듈은 아이오닉 5에 장착된다.

IGBT는 전력반도체 소자 중 하나로, 전기차 핵심 부품이다. 이 칩을 넣은 파워모듈은 배터리에 저장된 직류전원(DC)을 교류전원(AC)으로 변환해 구동모터에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반도체 칩을 생산하는 데 3개월, 모듈로 만드는 데 한 달이 걸린다. 웨이퍼 투입부터 완제품 생산까지 4개월이 소요되는 셈이다.

인피니언이 생산하는 파워모듈 칩에 불량이 발생한 것은 지난 4월 초다. 4개월 뒤인 8월 중순부터 현대차에 납품할 물량이었다. 당장 이달부터 공급 차질이 발생할 전망이다. 불량 제품이 생산된 기간이 2개월인 점을 감안하면 10월 중순까지 공급난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항공편으로 대체품 긴급 공수

현대차는 인피니언의 TFT를 통해 최우선 공급 방안을 마련 중이다. 지연된 공급 일정을 단축하기는 쉽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현대차는 우선 대체품 마련에 나섰다. 세계 5위 차량용 반도체 회사인 스위스 ST마이크로를 통해 대체품을 개발 중이다. 글로벌 차량용 반도체 회사에서 항공편으로 칩을 실어 나르는 노력도 병행하고 있다.

그럼에도 일부 생산 차질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게 업계 관측이다. 현대차는 이달 영업점에 전달한 차종별 출고 정보에서 아이오닉 5에 대해 “현재 기준 예상 납기는 12개월 이상이며, 반도체 공급 부족이 추가로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안내했다.

반복되는 반도체 공급난을 해결할 방안은 결국 내재화라는 지적이 나온다. 현대모비스는 최근 2분기 실적 발표에서 상당수 차량용 반도체를 자체 생산하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현대모비스는 “전력반도체에 중점을 두고 내재화를 위한 개발을 진행 중”이라며 “시스템 반도체도 개발 영역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고성능 반도체는 외부 협력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지난달 미국 판매 10% 넘게 감소

지난달에도 차량용 반도체 공급난에 따른 생산 차질이 이어지면서 현대차·기아의 미국 판매량(12만8283대)은 전년 동기 대비 10.8% 감소했다. 재고 부족으로 미국 자동차 시장 자체가 위축됐기 때문이다. 현대차(6만5834대)는 10.6%, 기아(6만2449대)는 10.9% 줄었다. 그러나 도요타(-21.2%), 혼다(-47.4%) 등 실적이 공개된 경쟁 업체의 평균 판매량이 작년보다 24.8% 감소한 점을 고려하면 상대적으로 선방했다는 평가다.

미국 전체 실적은 줄었지만 친환경차는 선전하고 있다. 현대차·기아는 작년 7월보다 33.2% 증가한 1만5109대의 친환경차를 판매했다. 이 가운데 전기차는 4966대로 139.8% 급증했다. 하이브리드카도 1만114대 판매되며 9.7%의 증가율을 기록했다. 기아는 10월부터 신형 니로 하이브리드를 판매할 예정이어서 성장세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김일규/김형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