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나무 박사' 허태임 "우영우 인기 반갑지만 식물 도구화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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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분류학자 허태임의 나의 초록목록' 출간…"팽나무 가치 알려지길"
백두대간수목원서 멸종위기종 연구…남북관계 회복시 북한 현지조사 꿈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소덕동 팽나무'가 나온 뒤 '너처럼 팽나무를 알아보는 눈이 있는 것 같다'며 지인들 연락을 많이 받았어요.
'우영우' 인기로 팽나무가 주목받아 반갑지만, 식물이 도구화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단지 현재 유행에 발맞추기 위한 수단이 돼서는 안 됩니다.
"
국립DMZ자생식물원을 거쳐 산림청 산하 공공기관인 국립백두대간수목원에서 멸종 위기 식물 보전 연구를 하는 허태임(36) 박사를 최근 전화로 만났다.
인터뷰는 '식물분류학자 허태임의 나의 초록목록'(김영사) 출간을 맞아 이뤄졌다.
1년에 절반 이상을 숲에서 보낸다는 그는 "현장에 답이 있다"고 말했다.
2박 3일 일정으로 산림청 특산식물 문수조릿대 서식지 탐사에 나선 허 박사는 이날도 이른 아침 지리산 자락에 올라 오후 늦게 내려왔다.
그는 대학에서 목재해부학을, 대학원에서 식물분류학을 전공했다.
10여 년간 팽나무를 연구하며 박사 학위를 받은 허 박사는 '팽나무 전문가'로 통한다.
우영우 효과로 소나무나 느티나무보다 덜 알려진 팽나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내일인 양 즐거워하는 중이다.
허 박사는 "소나무는 우리 민족의 얼과 같고, 느티나무는 목재에 쓰임이 많아 일찌감치 천연기념물과 보호수로 지정됐다"며 "팽나무의 가치도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만 "특정 종에만 집착하지 말고 덜 알려진 다른 식물들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어릴 적 또래가 귀한 시골 마을에서 자란 그에게 '마을 지킴이' 팽나무는 유일한 친구였다.
문예부 활동을 하며 팽나무 앞에서 글을 쓰거나 읽었고, 힘들 땐 소원을 빌었다.
"볼 때마다 생각하는 거지만 이 팽나무 정말 멋있습니다"라는 영우의 대사는 허 박사 생각과도 같다.
그가 식물과 사랑에 빠진 데는 할머니의 영향이 컸다.
그에게 첫 식물 선생님인 할머니는 산과 들, 강으로 함께 다니며 철쭉 구분법을 가르쳐줬다.
그가 밤에 배앓이를 하면 짓이겨 만든 미나리즙을 주고 코를 쥔 채 마시게 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한참 뒤에야 이 방법이 '동의보감'에 나오는 치료법이란 걸 알았다.
나무를 가꾸는 일이 취미인 아버지는 봄에는 매화를, 가을에는 국화를, 평소에는 대나무와 소나무를 다듬었다.
아버지로부터 나무를 돌보는 방법을 자연스레 익혔다.
끝눈이 여력을 다했다고 판단할 때 비로소 나무가 곁눈을 틔운다는 것도 배웠다.
허 박사는 "돌아보면 내 주변에 언제나 식물이 있었다"고 했다.
그는 책에서 비무장지대(DMZ)와 국가보안지역(군사보호시설·상수원보호구역 등) 등 일반인들의 접근이 제한된 비밀의 공간을 종횡무진 움직이며 식물을 만나고 기록한 이야기를 소개했다.
섬진달래, 모데미풀, 댕강나무, 눈측백, 얼레지 등 생소한 식물의 이름도 다수 등장한다.
모든 식물학자가 그렇듯 그 역시 북녘땅에 대한 관심이 많다.
DMZ자생식물원 근무 시절 5년간 DMZ를 다니면서 "두 얼굴을 가진 야누스적인 모습을 봤다"고 했다.
생물 다양성의 보고로 일컬어지는 곳이지만 군사적인 목적에 따른 개입이 계속 이뤄져 외래식물의 침입도 많은 곳이라는 것이다.
남북 관계가 좋아지면 직접 북한 숲을 돌아다니며 식물을 조사하는 게 그의 꿈이다.
허 박사는 백두대간이 중국을 거쳐 동북아시아산맥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북한 현장 조사는 자생식물의 남·북방한계선, 기후변화 연구에도 필수적이라고 본다.
그는 이미 북한 식물 목록도 작성해 놓은 상태다.
그는 코로나19 사태 직전인 2019년 9월 중국 지린성 얼다오바이허(二道白河) 진을 거쳐 1주일간 백두산 현지 조사를 다녀온 일화도 소개했다.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인 복주머니란, 가시오갈피 등을 확인하며 "남한의 강원도가 훼손되기 수십 년 전 싱싱했던 침엽수림의 모습을 백두산 저지대에서 보고 신이 났다"고 떠올렸다.
또 "남한에서 완전히 사라질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 북방계 식물들이 아주 넓은 지역에서 안전하게 잘 자라고 있었다"며 "우리의 과거를 떠올리며 언젠가 자본주의가 들어오고 개발이 된다고 하더라도 서식지를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식물은 늘 같은 자리에 있는 것 같지만, 단 한 번도 같은 모습이었던 적이 없어요.
계절과 습도, 햇빛의 양 등에 따라 늘 다르거든요.
나한테 요구하거나 바라지 않고 지루해질 틈을 주지 않기 때문에 벗어날 수가 없어요.
식물과 연애하고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지 않나요.
" /연합뉴스
백두대간수목원서 멸종위기종 연구…남북관계 회복시 북한 현지조사 꿈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소덕동 팽나무'가 나온 뒤 '너처럼 팽나무를 알아보는 눈이 있는 것 같다'며 지인들 연락을 많이 받았어요.
'우영우' 인기로 팽나무가 주목받아 반갑지만, 식물이 도구화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단지 현재 유행에 발맞추기 위한 수단이 돼서는 안 됩니다.
"
국립DMZ자생식물원을 거쳐 산림청 산하 공공기관인 국립백두대간수목원에서 멸종 위기 식물 보전 연구를 하는 허태임(36) 박사를 최근 전화로 만났다.
인터뷰는 '식물분류학자 허태임의 나의 초록목록'(김영사) 출간을 맞아 이뤄졌다.
1년에 절반 이상을 숲에서 보낸다는 그는 "현장에 답이 있다"고 말했다.
2박 3일 일정으로 산림청 특산식물 문수조릿대 서식지 탐사에 나선 허 박사는 이날도 이른 아침 지리산 자락에 올라 오후 늦게 내려왔다.
그는 대학에서 목재해부학을, 대학원에서 식물분류학을 전공했다.
10여 년간 팽나무를 연구하며 박사 학위를 받은 허 박사는 '팽나무 전문가'로 통한다.
우영우 효과로 소나무나 느티나무보다 덜 알려진 팽나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내일인 양 즐거워하는 중이다.
허 박사는 "소나무는 우리 민족의 얼과 같고, 느티나무는 목재에 쓰임이 많아 일찌감치 천연기념물과 보호수로 지정됐다"며 "팽나무의 가치도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만 "특정 종에만 집착하지 말고 덜 알려진 다른 식물들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어릴 적 또래가 귀한 시골 마을에서 자란 그에게 '마을 지킴이' 팽나무는 유일한 친구였다.
문예부 활동을 하며 팽나무 앞에서 글을 쓰거나 읽었고, 힘들 땐 소원을 빌었다.
"볼 때마다 생각하는 거지만 이 팽나무 정말 멋있습니다"라는 영우의 대사는 허 박사 생각과도 같다.
그가 식물과 사랑에 빠진 데는 할머니의 영향이 컸다.
그에게 첫 식물 선생님인 할머니는 산과 들, 강으로 함께 다니며 철쭉 구분법을 가르쳐줬다.
그가 밤에 배앓이를 하면 짓이겨 만든 미나리즙을 주고 코를 쥔 채 마시게 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한참 뒤에야 이 방법이 '동의보감'에 나오는 치료법이란 걸 알았다.
나무를 가꾸는 일이 취미인 아버지는 봄에는 매화를, 가을에는 국화를, 평소에는 대나무와 소나무를 다듬었다.
아버지로부터 나무를 돌보는 방법을 자연스레 익혔다.
끝눈이 여력을 다했다고 판단할 때 비로소 나무가 곁눈을 틔운다는 것도 배웠다.
허 박사는 "돌아보면 내 주변에 언제나 식물이 있었다"고 했다.
그는 책에서 비무장지대(DMZ)와 국가보안지역(군사보호시설·상수원보호구역 등) 등 일반인들의 접근이 제한된 비밀의 공간을 종횡무진 움직이며 식물을 만나고 기록한 이야기를 소개했다.
섬진달래, 모데미풀, 댕강나무, 눈측백, 얼레지 등 생소한 식물의 이름도 다수 등장한다.
모든 식물학자가 그렇듯 그 역시 북녘땅에 대한 관심이 많다.
DMZ자생식물원 근무 시절 5년간 DMZ를 다니면서 "두 얼굴을 가진 야누스적인 모습을 봤다"고 했다.
생물 다양성의 보고로 일컬어지는 곳이지만 군사적인 목적에 따른 개입이 계속 이뤄져 외래식물의 침입도 많은 곳이라는 것이다.
남북 관계가 좋아지면 직접 북한 숲을 돌아다니며 식물을 조사하는 게 그의 꿈이다.
허 박사는 백두대간이 중국을 거쳐 동북아시아산맥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북한 현장 조사는 자생식물의 남·북방한계선, 기후변화 연구에도 필수적이라고 본다.
그는 이미 북한 식물 목록도 작성해 놓은 상태다.
그는 코로나19 사태 직전인 2019년 9월 중국 지린성 얼다오바이허(二道白河) 진을 거쳐 1주일간 백두산 현지 조사를 다녀온 일화도 소개했다.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인 복주머니란, 가시오갈피 등을 확인하며 "남한의 강원도가 훼손되기 수십 년 전 싱싱했던 침엽수림의 모습을 백두산 저지대에서 보고 신이 났다"고 떠올렸다.
또 "남한에서 완전히 사라질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 북방계 식물들이 아주 넓은 지역에서 안전하게 잘 자라고 있었다"며 "우리의 과거를 떠올리며 언젠가 자본주의가 들어오고 개발이 된다고 하더라도 서식지를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식물은 늘 같은 자리에 있는 것 같지만, 단 한 번도 같은 모습이었던 적이 없어요.
계절과 습도, 햇빛의 양 등에 따라 늘 다르거든요.
나한테 요구하거나 바라지 않고 지루해질 틈을 주지 않기 때문에 벗어날 수가 없어요.
식물과 연애하고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지 않나요.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