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수교 140주년을 맞아 6·25전쟁에서 전사한 미군과 카투사 전사자 4만여 명의 이름을 새긴 ‘한국전 전사자 추모의 벽’ 준공식이 27일 열렸다. 미국을 방문 중인 박민식 국가보훈처장(왼쪽)이 준공식 전날인 26일 미국 워싱턴DC 한국전 참전 기념공원 내 추모의 벽에서 카투사 전사자 유족과 탁본을 뜨고 있다.
야권의 대선 주자들이 6·25 전쟁 당시 국군 전사자 1701명이 발생한 금성 전투를 다룬 중국 영화의 수입 허가를 두고 분노했다. 이들은 문재인 정부가 대중 굴욕외교를 펼치고 있다며 중공군을 영웅으로 묘사한 영화 수입을 허가한 의도가 무엇이냐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영상물등급위원회(영등위)는 지난달 30일 심의를 거쳐 6·25 전쟁 말미 연합군과 중공군 사이에서 벌어졌던 전투를 다룬 영화 '1953 금성 대전투'의 심의를 마쳤다. 극장 개봉용이 아닌 비디오용으로 15세 관람가 등급이 부여됐다.야권의 대선 주자들은 이러한 영등위의 결정에 반발했다. 영화가 중공군을 영웅시하고 있는 데다 금성 전투에서 국군은 중공군과 싸움을 벌이는 과정에서 전사자 1701명, 부상자 7548명이 발생했으며 4136명이 포로가 되거나 실종된 아픔의 역사를 지녔기 때문이다.국민의힘 대선 주자 유승민 전 의원은 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문재인 정부 대중국 굴욕외교의 끝은 어디인가"라며 "영등위가 6.25전쟁 당시 중공군의 침략을 미화한 중국 영화 1953 금성 대전투에 관람 등급을 부여한 건 충격이 아닐 수 없다"고 적었다.그는 "'한국은 작은 나라, 중국은 높은 산봉우리'라고 하던 문 대통령의 굴욕적인 발언은 아직도 국민의 속을 부글부글 끓게 하고 있다"면서 "이것도 모자라 대한민국을 침략한 중공찬양 영화를 우리 안방에서 보라는 것이냐"고 했다.그러면서 "사드배치 이후 중국은 지금까지 한한령을 유지하면서 한국의 드라마나 영화를 배척하고 있다"며 "문화 상호주의는 어디로 갔는가. 중국 정부에 굴욕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게 문재인식 상호주의인가"라고 꼬집었다.또 다른 대선 주자인 최재형 전 감사원장도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최 전 원장도 이날 페이스북에 "북진 야욕에 불타는 한국군? 이게 정상이냐"며 "중국 포털사이트 바이두에서 항미원조 70주년을 기념해 제작했다고 소개된 그 영화가 15세 이상 관람가 등급을 받았다"고 썼다.이어 "영화 홍보 포스터에는 '미군의 무자비한 폭격과 함께 북진 야욕에 불타는 한국군의 대규모 공세가 시작된다. 인민군 공병대는 결사 항전을 준비했다. 금강천을 한국군 사단의 피로 물 들인 인민군 최후의 전투'라고 쓰여 있다"면서 "영화는 금성전투를 철저히 중국과 북한의 시각으로 제작한 것"이라고 지적했다.끝으로 "영화에 관한 판단과 비판은 시청자들의 몫"이라면서도 "하지만 청소년들에게 침략 전쟁에 가담한 중국 인민군을 영웅으로 묘사한 영화를 보여주는 의도가 도대체 무엇이냐"고 덧붙였다.김대영 한경닷컴 기자 bigzero@hankyung.com
미국을 공식 실무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동맹의 힘이 필요한 순간마다 한국은 변함없이 미국과 함께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날 한미정상회담을 마친 뒤, 워싱턴DC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공원에서 열린 '미(美) 한국전 전사자 추모의 벽' 착공식에 참석해 "미국과 한국은 고통스러운 역사도 영광스러운 순간을 항상 함께 해왔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어 문 대통령은 "추모의 벽에는 4만3764명의 한국전 전사자 이름을 새길 것"이라며 "용사들의 희생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말했다. 아울러 문 대통령은 "미국은 가치의 힘으로 세계를 바꿨다.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며 차별 없이 누구나 자유롭고 평등해야 한다는 미국의 건국 이념은 세계의 보편적 가치가 됐다"며 "한국 역시 그 가치의 힘으로 식민지와 전쟁, 독재와 빈곤을 극복하고 두려움이 아닌 희망의 이야기를 써올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은 "참전용사의 피와 땀, 우애와 헌신으로 태동한 한미동맹은 사람과 사람, 가치와 가치로 강하게 결속되며 발전해왔다"며 "양국은 자유와 민주주의, 법치와 인권이라는 공동의 가치를 수호하며 역사상 가창 모범적이고 위대한 동맹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했다. 이어 문 대통령은 "지난해 한국은 새로 발굴된 다섯분 참전용사의 유골을 최고의 예우를 다해 미국으로 송환했다"며 "한국 정부는 마지막 한 분의 영웅까지 떠나온 고향, 사랑하는 가족 품에 모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끝으로 문 대통령은 "2022년 우리 앞에 선 추모의 벽에서 미국과 한국의 미래 세대들이 평범하고도 위대한 이름들을 만나기 바란다"며 "1950년 낯선 땅에서 오직 애국심과 인류애로 자유와 평화의 길을 열었던 한 병사의 이름이 위대한 역사의 이야기로 길이 남을 것"이라고 덧붙였다.'추모의 벽'은 기념공원 내 추모 연못을 중심으로 설치되는 화강암 벽이다. 벽면에는 미군, 카투사 전사자 등 4만3천769명의 이름과 유엔 참전국 수, 부상자 수가 새겨진다.6·25전쟁에서 헌신한 참전용사에 대해 감사와 한미 간 우호 협력 증진의 뜻을 담은 것으로, 정부는 작년과 올해 예산 대부분을 부담하며 건립을 전폭 지원했다. 워싱턴=공동취재단·서울=김수현 한경닷컴 기자 ksoohyun@hankyung.com
“두 번 다시 단 한 뼘의 영토, 영해, 영공도 침탈당하지 않을 것이다.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위협한다면 단호히 대응할 것이다.”지난 25일 경기 성남 서울공항에서 열린 6·25전쟁 70주년 행사의 문재인 대통령 기념사는 그 어느 때보다 결연했다. 6·25전쟁 70주년이라는 특수성을 감안해도 최근까지 대북 유화 메시지를 앞세웠던 모습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웃음기 사라진 얼굴의 문 대통령이 “전방위적으로 어떤 도발도 용납하지 않을 강한 국방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 대목에서는 원로 참전용사와 유족들의 박수가 터져나왔다.현직 대통령의 6·25 기념식 참석은 10년 만이었다. 문 대통령은 취임 이후 참전용사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함께했었다. 문 대통령은 이번 기념식 참석을 앞두고 수차례에 걸쳐 원고를 수정해가며 메시지 수위를 고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엄중한 남북 관계로 인해 이번 기념사에는 한 문장 한 문장 대통령의 고심이 반영됐다”고 전했다.“6·25전쟁은 오늘날 한국의 정체성”청와대 안팎에서는 문 대통령의 기념사가 한결 단호해진 배경에는 최근의 남북 상황과 함께 6·25전쟁이 현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역사적 사건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문 대통령은 이날 기념사에서 “6·25는 오늘의 우리를 만든 전쟁”이라고 규정했다. 지난 70년간 수많은 난관을 극복하고 세계 10위 경제대국으로 도약할 수 있었던 자신감의 원천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가장 평범한 사람을 가장 위대한 애국자로 만들었고 6·25전쟁을 극복한 세대에 의해 한강의 기적을 이뤘다”며 “국민이 지켜낸 대한민국은 국민을 지켜낼 만큼 강해졌다”고 말했다.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평화는 강한 국방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게 대통령의 평소 소신”이라며 “다만 남북 대화에 가려 이런 부분이 잘 알려지지 않은 면이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남북연락사무소 폭파 후 北 대응에 변화최근 북한의 도를 넘은 도발도 발언 수위에 영향을 미쳤다는 후문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15일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 기념사에서 “기대만큼 북·미 관계와 남북 관계의 진전이 이뤄지지 않은 것에 대해 아쉬움이 크지만 소통의 끈을 놓지 않겠다”며 남북 교류협력의 의지를 변함없이 강조했다. 하지만 16일 북한이 남북 화해의 상징인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전격적으로 폭파한 뒤 문 대통령은 비공개 채널을 통해 “좌절감을 느꼈다”는 소회를 밝혀 북한에 대한 대응에 변화의 분위기가 감지됐다.이번 기념사에서는 대북 정책에서 유화적으로만 접근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란 분석도 있다. 실제 문 대통령은 북한을 향해 “세계사에서 가장 슬픈 전쟁을 끝내기 위한 노력에 담대하게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과 교수는 “우리 정부 대북 메시지의 터닝 포인트는 6·15 공동선언 기념사였다”고 분석했다. 박 교수는 “북한의 고충을 이해한다는 메시지를 보냈음에도 북한이 공동연락사무소 폭파로 대응하자 청와대가 굉장히 신중해진 모습”이라며 “북한의 군사적 옵션이 남아 있는 만큼 유화적인 제스처보다 군사적 도발은 막아야겠다는 강한 메시지를 낸 것 같다”고 말했다.장진호 전사자 70년 만의 귀향이날 기념식의 또 다른 하이라이트는 신원이 확인된 장진호 전투 전사자의 70년 만의 귀향이었다. 북한에서 유해가 발굴돼 하와이에서 한·미 유해감식단의 검사를 거쳐 국군 전사자로 확인된 147명 가운데 신원이 확인된 일곱 분은 이날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문 대통령은 고(故) 김동성 일병 등을 일일이 호명하며 “조국은 단 한순간도 당신들을 잊지 않았다”고 했다.1950년 11~12월 벌어진 장진호 전투는 모스크바 전투, 스탈린그라드 전투와 함께 세계 3대 동계 전투로 꼽힌다. 중공군 13만 명에게 포위된 미군 해병1사단의 퇴로 확보를 위해 한국군과 미군 보병이 투입되면서 수많은 전사자가 나왔다. 연합군이 후퇴하면서 10만 명의 피란민이 동행한 흥남철수는 문 대통령과도 남다른 인연이 있다. 당시 마지막 피란선인 ‘메러디스 빅토리아’에 문 대통령의 부모가 탑승해 거제로 피란했다. 문 대통령이 취임 첫해 미국 방문에서 첫 일정으로 워싱턴DC 장진호 기념비를 찾아 미국 참전용사들을 위로하는 행사를 한 것도 이런 인연에서다.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기념사에서 별도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문 대통령에게 장진호 전사자의 귀환은 개인적으로 감회가 남달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탁현민 의전비서관이 주도한 이날 기념식을 두고 청와대 안팎에서는 “엄숙하면서도 행사 집중도를 높인 기획이었다”는 평가가 나왔다.김형호/강영연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