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제2부(주심 이동원)는 지난 5월 근로자 A씨 등 21명이 B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임금 청구 소송에서 이같이 판단하고 1, 2심과 같이 회사 측 손을 들어줬다.
지방 공기업인 B공단은 2015년 행정자치부로부터 임금피크제 도입 권고를 받고 조합원 투표를 거쳐 보수규정(취업규칙)을 개정했다. 이에 따라 2016년부터 임금피크제로 감액된 연봉을 받게 된 A씨 등은 임금피크제가 무효이므로 깎인 임금 등 2억4800만원을 추가 지급하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그 근거로 2019년 대법원 판결을 들었다. 당시 대법원은 “개별 근로자의 근로계약이 임금피크제보다 근로자에게 유리하다면 개별 근로계약이 취업규칙에 우선한다(유리한 조건 우선의 원칙)”며 임금피크제가 무효라고 판단한 바 있다.
이 사건은 근로자 개별 동의가 없는 임금피크제는 무효라는 취지로 알려졌다. 이후 공공기관이나 금융권에서 임금피크제 무효 소송이 우후죽순 제기됐다. A씨 등도 이 대법 판결을 근거로 자신이 회사와 매년 개별 근로계약을 체결했으므로 임금피크제와 상관없이 원래 임금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하지만 대법원은 “A씨 등이 매년 개별 연봉계약을 체결한 사실은 인정된다”면서도 근로자들의 주장을 기각했다. 임금피크제 도입에 따라 개정한 이 회사 보수 규정에 따르면 “연봉 금액이 별도 지침으로 변경될 경우 지침에 따라 시행한다”는 부가 규정이 있었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개별 연봉계약의 내용은 정액의 연봉을 무조건 지급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근로자가 임금피크제 적용 대상일 경우에는 임금피크제를 적용한 연봉을 지급한다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개별 연봉계약이 있다고 해도 임금 부분이 취업규칙 등에 연동돼 있다면 이를 임금피크제에 우선하는 개별 계약으로 볼 수 없다는 의미다.
이 판결은 현재 진행 중인 다수의 임금피크제 무효 소송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조상욱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대법원이 ‘별도의 연봉계약’이 존재하는 상황에서도 유리한 조건 우선의 원칙을 배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이번 대법 판결은 연봉계약서에 ‘연봉 금액이 취업규칙에 따라 변경된다’는 취지의 내용이 있다면 유리한 조건 우선의 원칙이 애초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진석/곽용희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