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시인과 수학자 사이
어느 날 수학과의 한 학생이 교수를 찾아가 고민을 털어놓았다. “교수님, 아무래도 수학을 그만둬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수학자보다는 시인이 되고 싶어요.” 교수는 뜻밖에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잘 생각했네. 훌륭한 결정이야. 사실 수학자가 되기에는 자네 상상력이 너무 부족해.”

여기서 교수는 영국 수학자 고드프레이 하디다. 그는 수학의 핵심을 ‘뛰어난 상상력과 심미적인 아름다움’이라고 정의했다. 때론 시인을 능가하는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했다. ‘선형대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아일랜드 수학자 윌리엄 해밀턴도 “수학과 시는 모두 상상력으로 얻는 것이며, 수학의 목표인 진리와 시의 목표인 아름다움은 같은 물체의 양면”이라고 말했다.

11세기 페르시아 시인 오마르 하이얌은 뛰어난 수학자이자 천문학자였으며 이름난 시인이었다. 문학과 수학을 넘나드는 상상력으로 그는 유클리드 기하학 토대의 3차 방정식 해법을 찾았고, 500년 후의 그레고리 달력보다 더 정확한 달력을 만들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쓴 루이스 캐럴도 시인·작가이면서 옥스퍼드대 수학 교수였다.

한국인 최초로 ‘필즈상’을 받은 허준이 프린스턴대 교수 또한 “수학자의 내적 동기는 예술가의 그것과 같다”고 했다. 두 분야 모두 표현하기 어려운 개념을 고도의 함축적인 언어와 상징, 논리로 전달하는 게 공통점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를 “굉장히 애써서 어떤 아름다움을 간신히 봤는데 나만 아는 게 아니라 너한테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라고도 묘사했다.

이렇게 강한 끌림은 ‘학문의 즐거움’으로 이어진다. 이는 문명 발전의 동력이기도 하다. 구글의 검색 알고리즘이나 디지털 애니메이션 역시 수학 덕분에 가능했다. 이동통신에는 복잡한 파동을 수식으로 표현하는 변환 공식이 활용되고, 사진 저장용 JPEG 파일 형식에는 별개의 수학적 변환 5개를 연이어 수행하는 방식이 적용된다.

수학자들의 천재성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허 교수가 좋아한다는 미국 시인 데이비드 화이트는 “밤의 지평선 너머 감춰진 별 하나를 찾으려는 ‘꿈꾸는 자’의 자세”에서 근원을 찾는다. 한때 시인을 꿈꾸며 고교를 중퇴했던 천재 수학자도 은하 너머 감춰진 별 하나를 찾으려 수많은 상상의 나래를 펼쳤으리라.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