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새 중간상인, 작물 가격 폭락하자 수확 미루고 잔금도 안 치러
무더운 날씨에 결국 녹아내린 양상추…작년엔 병해 창궐로 큰 피해
'병해에 유통상 횡포까지'…2년째 녹아내린 양상추에 멍든 농심
"봄부터 애써 기른 작물인데 무더위에 비까지 맞아 결국 다 녹아내렸습니다.

"
28일 국내 양상추 주산지인 강원 횡성군 청일면 유평리에서 만난 농민 최모(62)씨는 장맛비 속에 형편없이 녹아버린 양상추들을 보며 애가 탔다.

최씨는 풍년을 바라며 올 4월 1만5천여㎡ 넓이의 밭에 씨를 뿌렸다.

봄 가뭄에 양상추가 잘 자라지 못할까 걱정하며 물도 흠뻑 줬고, 흰가루병이나 무름병이 돌지 않도록 약도 꼬박꼬박 뿌렸다.

그의 정성 덕분에 양상추들은 속이 꽉 차 단단하고 병도 없는 특상품으로 자랐다.

하지만 올해 초 밭떼기 계약을 한 중간유통 상인이 품질을 핑계로 수확을 미뤘다.

최씨는 속이 탔다.

이 지역 양상추는 파종 후 70∼80일 사이에 수확하지 않으면 더위가 찾아와 녹아버리기 때문이다.

'병해에 유통상 횡포까지'…2년째 녹아내린 양상추에 멍든 농심
결국 무더위 뒤로 장맛비가 내릴 때까지 수확은 이뤄지지 않았고, 자식처럼 기른 양상추는 형편없이 썩어버렸다.

최씨가 상인으로부터 받은 돈은 계약금 180만원이 전부였다.

잔금 1천600여만원은 고스란히 떼일 위기다.

중간유통 상인으로부터 피해를 본 농민은 최씨뿐만이 아니었다.

지역 작목회에 따르면 횡성군 내 농가 170여 곳이 이 같은 피해를 호소했다.

농가는 상인의 '나 몰라라'식 거래 이유로 가격 폭락을 꼽았다.

지난해 6월 8㎏들이 1상자 기준으로 도매가격이 2만원을 넘었던 양상추 가격은 올봄까지만 해도 1만5천원 선을 지켰다.

하지만 최근 들어 3천원까지 폭락해 인건비도 못 건질 상황에 이르자 상인들은 수확을 포기한 채 농가에 잔금을 치르지 않고 있다.

2년째 농사를 망치게 된 이곳 농민들은 그 피해까지 고스란히 떠안아야 할 상황이다.

'병해에 유통상 횡포까지'…2년째 녹아내린 양상추에 멍든 농심
지난해에는 늦은 장마로 양상추밭에 무름병, 흰가루병, 녹병 등 각종 병해가 창궐해 100만여㎡가 수확하지 못하는 피해를 봤다.

작목연합회장 김영식(63)씨는 "농가가 최고 품질의 작물을 생산하는 것이 첫 번째 의무지만, 상인들도 책임을 갖고 계약을 지켜야 한다"며 "신뢰가 쌓일수록 농민들이 안심하고 농사를 지을 수 있다"고 말했다.

강원농협 관계자는 "대형 유통망을 확보하지 못하고 소위 말하는 '철새' 유통 상인과 계약한 농가를 중심으로 피해가 확산하고 있다"며 "상인 횡포로 인한 피해 실태를 정확히 파악한 뒤 실질적인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병해에 유통상 횡포까지'…2년째 녹아내린 양상추에 멍든 농심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