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화물연대 총파업 7일차인 13일 경기 의왕시 내륙컨테이너기지(ICD)에서 노조원들이 운행 중인 화물차를 향해 선전전을 벌이고 있다. 정부와 화물연대는 전날 정부세종청사에서 오후 2시부터 8시간 넘게 4차 교섭을 진행했지만 최종 합의에는 이르지 못했다.  연합뉴스
민주노총 화물연대 총파업 7일차인 13일 경기 의왕시 내륙컨테이너기지(ICD)에서 노조원들이 운행 중인 화물차를 향해 선전전을 벌이고 있다. 정부와 화물연대는 전날 정부세종청사에서 오후 2시부터 8시간 넘게 4차 교섭을 진행했지만 최종 합의에는 이르지 못했다. 연합뉴스
전국민주노동조합연맹 화물연대본부의 파업이 1주일을 넘기고 있는 가운데 지난 12일 합의 직전까지 갔던 ‘안전운임제’ 협상이 막판에 결렬됐다. 파업 중단 가능성을 부풀렸던 첫 협상 성과가 무산된 책임 소재를 놓고 여야는 물론 협상 주체 간 ‘네 탓’ 공방이 가열되는 모양새다. 화물연대는 “국민의힘이 반대하고, 국토교통부가 눈치 보느라 합의가 무산됐다”고 주장한다. 국토부와 국민의힘은 “합의 내용이 적절하지 않아 국토부 스스로 반대 의사를 밝힌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7일째로 접어든 산업 현장 파업 피해는 한계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9부 능선’ 넘었던 협상

쟁점 국회로 떠넘기고 봉합하려다…'안전운임' 협상 더 꼬이게한 정부
국토부와 화물연대는 12일 파업 중단과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 관련 4차 교섭을 열었다. 화물연대와 국토부 관계자가 직접 협상 테이블에 앉고, 화주단체(무역협회, 시멘트협회 등)와 국민의힘은 국토부 관계자를 통해 교섭 과정에 의견을 전달하는 형태였다. 협상에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저녁 늦게까지 이어진 협상 결과, 화물연대와 국토부는 파업을 중단하고 안전운임제 일몰제를 연장하는 방향으로 의견을 모았다. 정부가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 안전운임제 품목 확대를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는 화물연대와 국토부 양자 간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라는 분석이다. 파업이 엿새째로 접어들던 당시 화물연대는 내부 동력이 줄어들며 출구전략이 시급했다. 소식통은 “전체 화물 운송자 중 조직률 5~10%에 불과한 화물연대가 이번 파업을 지속할 수 있었던 건 비조합원 참여가 높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런 상황에서 파업 장기화는 대열 이탈을 가속화할 수 있기에 화물연대는 당장은 일몰기간을 연장하고 추후 일몰제 폐지를 국회에서 논의하는 것으로 출구전략을 짠 것”이라고 했다.

국토부도 당장의 급한 불을 끄고 추후 논의가 법제화로 넘어가 공을 국회로 넘기는 것이 유리한 상황. 국토부는 일몰이 예정돼 파업이 충분히 예상됐는데도 늑장 대응을 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어명소 국토부 2차관은 8일 기자간담회에서 “안전운임제는 궁극적으로 법률 개정 사안이라 국회에서 논의되고 결정될 필요가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결렬 책임 놓고 엇갈리는 입장

한국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국토부와 화물연대는 12일 밤 10시께 3차 수정안까지 교환하는 등 잠정 합의문 완성 직전까지 갔다. 좋았던 분위기가 돌변한 건 정회 후 협상을 재개한 직후다. “협상에 복귀한 국토부가 돌연 반대의사를 밝혔다”는 게 화물연대 측 주장이다. 당시 화물연대는 더불어민주당과 함께 ‘합의문 결과 발표 및 추가 국회 논의 추진 전략’ 기자회견 준비까지 마친 상태였다.

국토부의 갑작스러운 기류 변화에 대해선 양측의 주장이 엇갈린다. 화물연대는 “국민의힘이 반대해 다 된 협상이 결렬됐다”고 밝혔다. 당시 양측이 준비하고 있던 합의문은 화물연대, 화주단체, 국토부, 국민의힘 4자가 참여하는 ‘공동성명서’ 형식이었고, 국민의힘이 이 방식에 부담을 느껴 막판 반대를 했다는 것이다. 국토부 역시 여당 눈치를 보느라 스스로 합의를 엎었다는 게 화물연대 측 주장이다. 소식통은 “일몰제 폐지를 노력한다는 내용을 포함한 공동성명에 국민의힘이 이름을 올리면 논의의 주 무대는 국회로 넘어간다”며 “다수당인 민주당 주도로 일몰제 폐지로 귀결될 텐데, 이는 산업계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국민의힘엔 엄청난 부담이 됐을 것”이라고 짚었다.

피해 불어나는 산업 현장

국토부는 “국민의힘과의 교감 없이 우리 스스로 반대했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합의 내용이 경제에 미칠 파장이 커 합의를 잠정 보류했다는 설명이다. 국민의힘도 합의에 개입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원회 의장은 “협상 당사자는 화주와 화물연대이며 정부는 조정하는 역할”이라고 선을 그었다. 한마디로 화물연대의 ‘과민반응’이라는 얘기다.

책임 공방으로 시간을 허비하는 사이 산업 현장의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이번 파업으로 발생한 국내 피해 규모는 1조5868억원이다. 철강, 석유화학, 자동차, 시멘트 등 국내 주요 업종에서 수출, 수입, 생산에 차질이 나타난 결과다.

안전운임제 소관 부처인 국토부가 책임감을 갖고 컨트롤타워 기능을 맡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토부는 이날 협상 결렬의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화물연대와 지속적으로 대화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아직 5차 교섭 일정은 잡히지 않았다.

구민기/곽용희/이혜인 기자 koo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