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김병언 기자
사진=김병언 기자
“위기가 올 때마다 허리띠를 졸라매면, 움츠러들기만 할 뿐 성장은 못 합니다. 고물가, 고환율, 고금리 등 이른바 ‘3고(高) 현상’과 전쟁이 겹친 악조건이지만, 미래를 위한 투자를 멈추지 않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임정배 대상 사장(사진)은 8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미래 경쟁력 확보를 위한 ‘적시 투자’는 꼭 필요하다”며 이같이 밝혔다. 대상은 지난 3월 말 식품업계 최초로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인근에 1만㎡(3000평) 규모의 김치공장을 가동한 데 이어 유럽 생산기지 설립, 인도네시아 공장 증축 등의 글로벌 투자를 추진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횡성과 거창 등에서 증설을 진행 중이다.

1991년 미원통상 사원으로 시작해 2017년 대상 대표이사에 오른 임 사장은 후배들의 ‘롤모델’이자 대상그룹 내 전략가로 통한다. 그는 “올해 최대 과제인 글로벌 공급망 안정화와 K푸드 위상 강화, 친환경 소재 사업 등을 통해 대상의 향후 100년을 준비하겠다”고 강조했다.

▷올해 경영환경에 대해 어떻게 진단하는지요.

“글로벌 공급망 불안,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로 유가와 원자재 가격이 지속해서 상승하고 있습니다. 고물가, 고환율, 고금리 등 3고 국면입니다.

대내외적 경영환경 악화로 당분간 경기 불확실성이 더욱 확대되는 상황이 지속될 것으로 봅니다. 대상도 그 영향을 분석해 부문별로 컨틴전시 플랜(비상계획) 등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원재료 상승 부담이 당초 예상보다 더 커지진 않았는지요.

“지난해부터 이어져 온 원재료 상승은 이미 올해 경영 부담이 될 것으로 예견돼 왔습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이상기온으로 누적된 작황 부진은 기존 예상을 뛰어넘는 원재료 가격 폭등을 불러왔어요. 환율상승, 고유가는 여기에 기름을 붓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대상은 글로벌 공급망 안정화가 올해 가장 큰 과제입니다. 원재료 비축기지를 확대하고 주요 원재료 추가매수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트레이더에게 의존하기보다는 계약 재배 등 현지 공급망을 자체 개발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지금과 같은 위기에서 경영전략은 어떻게 가져갑니까.

“투자 확대를 가속하기에는 어려운 시기임이 분명해요. 하지만 미래 경쟁력 확보를 위한 투자는 그 무엇보다 타이밍이 중요합니다. 선택과 집중 측면에서 적시 투자는 꼭 필요합니다.

위기가 왔을 때 허리띠를 졸라매기만 한다면 기업 경영은 계속 위축될 수밖에 없어요. 경험하지 못한 위기가 왔을 때 빨리 적응할 수 있는 체질을 만들어 놓는 것이 바로 기업이 할 수 있는 본질적 위기 대응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당장 몸집을 줄이고 투자를 중단할 계획은 없습니다.”

▷글로벌 사업 계획이 궁금합니다.

“글로벌 식품 사업은 2025년까지 연평균 30% 성장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김치, 소스, 간편식, 김 등 4대 중점 카테고리 중심으로 현지화 제품을 개발하는 동시에 소비자들이 브랜드를 경험할 기회를 확대할 예정이지요.

올해 초 미국 LA 공장을 완공해 김치와 ‘K소스’ 생산을 시작했습니다. 유럽에서는 현지 글로벌 기업들과 전분당, 사료, 아미노산 등 사업을 협력할 수 있는 신규 생산기지 건설을 검토 중입니다.

한국 식품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인도네시아에서 현지 공장을 증축하는 것도 추진 중이에요. 국내와 아시아 지역을 넘어 ‘글로벌 넘버원 김치’의 지위를 구축해 나갈 계획입니다.”

▷한류 열풍에 따른 영향이 있나요.

“전 세계적으로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커지며 한식도 인기가 높아지고 있어요. 여기서 한 단계 더 발전해 한식이 해외 주류 음식으로 자리 잡으려면 현지화가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태국 스리라차 소스가 핫소스의 주류에 들어간 것처럼, 한국의 고추장도 한국식이 아닌 현지인의 입맛에 맞춰 핫소스의 대표주자로 자리 잡게 하겠다는 것이지요.

‘K푸드’에 대한 관심이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지속해서 유지되기 위해선 국가브랜드 가치를 높여야 합니다. 기업 뿐 아니라 정부의 전략적이고 적극적인 활동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올해 가장 주목하고 있는 사업 분야는 무엇인가요.

“올해는 기업간거래(B2B) 시장과 가정간편식(HMR) 시장을 본격적으로 공략하고 있습니다. 친환경 사업도 주목하고 있어요. 바이오매스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생분해플라스틱 사업을 비롯해 바이오 기술을 활용하는 대체단백질과 배양육, 재생에너지 사업에 대한 투자를 강화할 방침입니다. 소재 다변화를 위해 기존 옥수수 기반의 전분당 사업에서 탈피해 타피오카, 감자 등 다양한 곡물로의 확장을 위한 글로벌 신규 투자를 추진 중입니다.”

▷주주들을 위한 정책이 있다면.

“지난해 대상의 주가수익비율(PER)은 6배 수준으로 동종 식품기업들보다 저평가됐습니다. 서울 신설동과 상봉동 사옥매각 이익이 영업외이익에 반영돼 순이익이 증가한 영향이 크지요.

앞으로 더욱 주주와의 소통을 강화할 방침입니다. 이를 위해 기획팀, 재무팀, 홍보팀 등 유관부서가 포함된 기업설명(IR)협의체를 확대, 발전시킬 계획입니다. 배당정책에 대해서도 내부 기준을 수립하고 주주들에게 알려 배당에 대한 예측 가능성을 높일 예정이에요. ”

▷‘샐러리맨 신화’로 불리는 선배로서 직장인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회사의 경영성과는 구성원 개개인이 이루어내는 개별성과의 집합체입니다. 경영환경이 급속도로 변화하는 시대에 기업들이 인재 발굴과 육성에 주력하는 이유일 겁니다.

‘자기 일에 대한 주인의식을 가지라’는 말을 꼭 전하고 싶어요. ‘회사에 대한 주인의식’과는 다른 얘기지요. 자기 일에 대해 자부심과 자신감을 갖고 전문성을 키우기 위해 노력한다면, 이는 회사 성과로 연결되기에 앞서 본인의 발전과 직결됩니다. ‘나의 주인은 나이듯, 내 일의 주인도 나’라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하수정 기자 agatha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