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비오(왼쪽)가 5일 제주 서귀포시 핀크스GC에서 열린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투어 SK텔레콤오픈에서 우승을 확정한 뒤 최경주로부터 축하 인사를 받고 있다.  KPGA 제공
김비오(왼쪽)가 5일 제주 서귀포시 핀크스GC에서 열린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투어 SK텔레콤오픈에서 우승을 확정한 뒤 최경주로부터 축하 인사를 받고 있다. KPGA 제공
김비오(32)가 우승 세리머니를 하지 않은 건 2019년 9월 열린 한국프로골프(KPGA) DGB금융그룹 대구경북오픈 때부터다. 경기 도중 그가 소음이 발생한 갤러리 쪽을 향해 손가락 욕설을 날린 게 화근이었다. 김비오는 18번홀에서 우승을 확정한 뒤에도 세리머니 대신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기 바빴다.

KPGA는 자격 정지 3년에 벌금 1000만원을 김비오에게 부과했다. 2020년 7월 특별 사면으로 자격 정지 징계가 풀린 이후에도 그는 자숙했다. 정신적으로 힘든 시절을 보냈던 김비오는 지난해 11월 LG 시그니처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우승으로 재기에 성공했고, 지난달 GS칼텍스 매경오픈에서도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하지만 세리머니는 없었다. 가볍게 주먹을 흔드는 정도였다. 김비오는 “겸손한 모습을 보이고 싶었다”며 “골프 팬분들께 진심을 조금이라도 보여드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음에 또 우승 순간이 찾아오면 그때는 참지 않고 기쁨을 표현하겠다”고 했다.

김비오에게 ‘그때’가 찾아왔다. 그는 5일 제주 서귀포시 핀크스GC(파71)에서 열린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투어 최종 4라운드에서 버디 8개를 몰아쳐 8언더파 63타를 적어내며 우승을 차지했다. 나흘 합계 19언더파 265타를 친 그는 2위 강윤석(36)을 7타 차로 따돌렸다. 이 대회 최소타 신기록이자 역대 최다 타수 차 우승 신기록이다.

김비오는 아내 배다은 씨에게 ‘볼 키스’를 하는 등 그동안 숨겨온 우승 기쁨을 가족과 만끽했다. 김비오는 “힘든 시간 곁을 지켜준 가족에게 정말 감사하다”고 말했다.

김비오는 심리적인 족쇄에서 완벽히 벗어난 듯 보인다. 우승을 쌓는 속도가 예사롭지 않다. 지난해 11월부터 출전한 4개 대회에서 3승을 쓸어 담았다. 올 시즌 2승이자 코리안투어 8승째다. 그가 이번 대회 우승상금 2억6000만원을 보태 올 시즌 벌어들인 상금만 5억6000만원이다. 2012년 이후 10년 만에 코리안투어 상금왕 탈환도 노린다.

맹동섭(35)과 공동 선두로 출발한 김비오는 일찌감치 승부를 끝냈다. 1, 2번홀에서 연속 버디를 잡은 뒤 4, 5번홀에서 연속 버디를 추가했다. 반환점을 돌기도 전에 2위 그룹에 6타 차까지 앞섰던 그는 남은 후반 홀에서도 3타를 줄였다.

이 대회 최고령 참가자인 ‘탱크’ 최경주(52)는 아들뻘 선수들 못지않은 경기력을 과시하며 ‘톱10’에 들었다. 이날 버디 7개를 몰아치는 동안 보기는 1개로 막아 6언더파 65타로 최종 라운드를 장식했다. 최종 합계 10언더파 274타를 치며 공동 7위로 경기를 마쳤다. 최경주는 “나흘 내내 후배들과 시합하면서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며 “오늘 시작이 나쁘지 않았고 후반도 잘 마무리해 매우 기쁘다”고 밝혔다.

지난 10년간 무명으로 지낸 강윤석은 준우승을 차지하며 자신의 투어 최고 성적을 거뒀다. 오는 9월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진출을 확정한 김성현(24)은 공동 20위(6언더파 278타)로 대회를 마쳤다.

서귀포=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