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결성 25주년…"만감 교차, 밴드라는 틀 안에 갇히지 않겠다"
국민 응원가 '우리의 힘을…' 20년 만에 정식 발매 준비 중
레이지본 "펑크가 뭐냐고? 하고 싶은 이야기 하는 것"
"저희는 해체까지 했었고, 그 외에도 수많은 일을 겪었어요.

어떤 분은 '레이지본은 밴드가 겪을 수 있는 모든 것을 경험한 팀'이라고까지 하셨죠. 울고 웃던 기억들이 확 생각나네요.

" (보컬 준다이)
대한민국 인디 1세대로 꼽히는 밴드 레이지본은 5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결성 25주년'을 묻는 말에 "만감이 교차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지난 1997년 결성된 레이지본은 스카 펑크를 기반으로 에너지 넘치는 음악을 선보여 사반세기 동안 큰 사랑을 받았다.

'사노라면', '두 잇 유어셀프'(Do It Yourself) 등의 히트곡을 배출해 노브레인·크라잉넛과 함께 한국 록 음악계를 이끌어왔다는 평가를 받았다.

밴드 기타를 담당해온 임준규는 "깊게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역사가 오래되면 좋아해야 하는지, 슬퍼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도 못 내리겠다"며 "술이라면 오래 묵힐수록 좋은 건데 밴드는 모르겠다.

그냥 물 흐르듯이 시간이 흘러간 것 같다"고 돌아봤다.

그러면서 "예전에 한 방송국에 갔더니 과거 카메라를 들고 있던 형이 이제 국장님이 돼 있더라"고 너스레도 떨었다.

이들은 2002년 1집 '레이지 다이어리'(Lazy Diary)를 내고 정식 데뷔했으며 이후 두 장의 정규음반을 더 내고 2005년 멤버들의 입대 등으로 해체했다.

이후 전 멤버 노진우가 다른 멤버와 레이지본이라는 팀명 그대로 활동하다가 2013년 원년 멤버들이 8년 만에 재결합했다.

이들은 지난해 준다이, 임준규, 김석년(드럼), 정태준(베이스) 4인조로 팀을 재정비해 본격적인 활동 재개를 알렸다.

준다이는 "밴드가 계속 달려 나갈 때는 다들 무리해서라도 팀에 참여하려고 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스케줄이 딱 끊겨버렸다"며 "이러한 상황은 각자 영역에서 밴드 참여를 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됐다.

본인 일에 집중하는 멤버들은 나가게 됐다"고 팀 개편 배경을 설명했다.

'일이 딱 끊겨버렸다'는 말처럼 코로나19는 대중음악인, 특히 업(業)으로 삼는 밴드에 치명적이었다.

간간이 비대면 온라인 공연 기회도 왔지만, 관객 하나 없이 카메라만 보고 하는 터라 오히려 더 힘들었다고 했다.

임준규는 "얼마 전 관객이 있는 공연을 오랜만에 했는데, 우리가 정말 공연을 그리워했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사람들의 함성이 그리웠다.

앞으로 정말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기간 공연에 아예 없는 상황이었잖아요.

할 게 없어서 곡을 썼어요.

그동안 해 온 경험으로 비싼 스튜디오를 쓰거나 크게 홍보를 하지 않아도 작업물을 낼 수 있는 노하우가 생겼죠." (준다이)
이 같은 상황에서 나온 새 싱글 '이보게나'는 코로나19 등에 신음하는 국민에게 전하는 레이지본의 힐링 메시지다.

이들은 펑키한 분위기 대신 다소 차분하게 '꽃은 또 다시 피지 않던가'라며 청자를 달래준다.

임준규는 "우리가 내놓는 메시지가 조금 어른스러워졌다는 느낌이 있다"고 소개했다.

가사를 쓴 준다이는 "코로나19 때문이 아니더라도 요즘 길을 잃고 불안해하는 친구들이 많다"며 "20대가 느끼는 불안감도 있겠지만, 나이가 들수록 아는 게 많아져서 느껴지는 불안감도 상당하다.

이런 불특정 다수에게 이야기해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들 잘하려고만 하다 보니 실패하면 엄청나게 스트레스를 받지 않느냐"라며 "심지어 요즘은 '노는 것'에 대해서도 좋은 방법을 찾아내려 스트레스를 받더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가 불안감에 휩싸여 초조하게 살아가는 게 안타까웠다"고 덧붙였다.

지난 25년간 무대에서는 늘 '꾸러기' 혹은 '악동' 이미지로 대중에게 즐거움을 선사했지만, 준다이 자신도 20년 가까이 공황장애와 싸워왔다.

그는 "본의 아니게 그러한 경험이 있다 보니 잘해야 한다는 압박에 쫓기는 삶을 사는 친구들에게 노래를 통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고 짚었다.

레이지본 "펑크가 뭐냐고? 하고 싶은 이야기 하는 것"
레이지본은 지난 4월에는 산업재해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를 다룬 싱글 '피라미드'를 발표했다.

지하철 스크린도어 참사, 부둣가 컨테이너 사고 등 산업 현장에서 안타깝게 유명을 달리한 이들의 뉴스를 접하고 먹먹했던 심정을 노래로 풀어냈다.

"사람들이 합심해서 이러한 현실을 고치면 되는 일이죠. 안타까움이 절망이 돼서는 안 돼요.

다들 일이 터지고 나서 좀 있으면 잊어버리는 게 절망이 포기를 낳은 것 같아 충격적이었어요.

" (준다이)
사실 이러한 노래는 대중적 인기를 얻기는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지난 25년을 버텨온 내공이 있는 레이지본이었기에 내놓을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레이지본은 이렇듯 지난 25년간 한 때는 대중을 웃겼다가, 때로는 울렸다가, 그러다가도 이번 신곡처럼 청자를 달래줬다.

그렇다면 이들이 지난 세월 켜켜이 쌓아 올린 펑크란 대체 무엇인지 조심스레 물어봤다.

"펑크가 뭐냐고요? 답은 없어요.

우리는 그냥 펑크가 좋아서 만난 사람들인데 '피라미드'처럼 어떤 이야기가 됐든 간에 하고 싶은 이야기라면 다 해버리는 게 바로 펑크죠." (준다이)
정답은 없다는 말처럼 레이지본은 최근에는 정태준의 제안으로 걸그룹 아이브의 '일레븐'(ELEVEN)을 커버한 영상을 공개하기도 했다.

23년 전에는 핑클의 '루비'도 부른 적이 있다.

정태준은 "일부러 인기 있고 유행하는 음악을 찾아서 듣는 편"이라며 "듣다 보면 록으로 편곡한 버전이 떠오르는 노래들이 있다.

'일레븐'은 '난 몰랐어 내 맘이 이리 다채로운지' 같은 포인트가 신선하게 들렸다"고 말했다.

레이지본은 올해 결성 25주년 말고 또 하나의 경사스러운 일이 생겼다.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을 맞아 내놔 '국민 응원가'로 등극한 히트곡 '우리의 힘을…'이 무려 20년 만에 정식 발매를 앞둔 것이다.

이 노래는 영국 팝스타 펫숍보이즈의 '고 웨스트'(Go West)를 리메이크 한 것인데, 그간 저작권 문제로 정식으로 내놓지 못하고 있었다.

'오∼오∼오∼' 하는 하이라이트 부분은 경기장에서 무수히 불렸지만, 실제로 국내 음원 사이트에서는 현재 이 노래를 들을 수 없다.

레이지본은 "정식 발매를 위해 현재 노래를 다듬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밴드 음악을 계속할 것이지만, 그 틀 안에 갇히고 싶지는 않아요.

한국 록을 살려야 하느니 록 밴드는 이래야 한다는 식의 이야기에 갇히지 않겠다는 겁니다.

그냥 저희는 하고 싶은 것을 할 거예요.

" (준다이)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