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희 서원대 교수
김병희 서원대 교수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말이 있다. 처음부터 기대감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다면 모르되, 기대하게 만들었다가 그 기대를 저버린다면 실망감이 훨씬 크게 마련이다.

벌레로 태어나지 않고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기대치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대체로 비슷하다. 기대치 위반 효과(Expectancy Violation Effect)라는 심리학 이론은 기대에 부응할 때와 어긋날 때 나타나는 인간의 반응을 흥미롭게 설명한다. 상대방의 행동이 기대치를 넘어서면 감동하지만,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면 실망하게 된다.

상대방의 행동이 자신의 기대치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위반하면 놀라움(호감의 증가)을 느끼지만, 부정적인 방향으로 위반하면 실망(호감의 감소)하게 된다는 것이 기대치 위반 효과 이론의 핵심이다.

예컨대, 부모가 자녀에게 뭘 사주겠다고 미리 약속했다가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크게 실망하지만, 기대감을 주지 않다가 자녀가 갖고 싶은 것을 갑자기 사주면 크게 놀라게 된다. 연인 사이를 비롯한 인간관계에서 나타나는 서프라이즈 이벤트는 긍정적인 방향에서 기대치를 위반하는 사례들이다.

미국 텐데이애드닷컴의 광고 ‘놀라는 아이’ 편(2016)에서는 눈을 크게 뜨고 입을 크게 벌린 채 놀라워하는 아이의 표정이 지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텐데이애드닷컴(10dayads.com)은 소형의 안내 광고를 최소한 10일 동안 누구나 자유롭게 게재할 수 있는 온라인 광고 플랫폼이다. 광고 효과가 기대 이상으로 높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경이로운 눈빛으로 정면을 응시하는 아이의 표정을 광고에 활용했다.

“와우, 텐데이애드닷컴을 주목하세요.” 헤드라인을 이렇게 쓰고 나서, 광고 플랫폼에 영상이나 사진을 자유롭게 게시할 수 있다는 내용을 보디카피에 소개했다. 광고 효과가 놀라울 정도로 높게 나타난다면 광고를 게재한 사람의 만족감이나 행복감도 높아질 것이다.

아다이 애드의 광고 ‘유리창 깨기’ 편(2019)에서는 유리창을 박살내는 장면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아다이 애드(Adai Ad)는 히브리어로 ‘성공적으로 지속되는’을 뜻하는 말로, 데이트 코칭은 물론 결혼 생활과 부부 관계에 대해 자문해주는 단체의 이름이다.

헤드라인은 이렇다. “당신은 분노, 좌절, 실망을 없애고 있습니까?(Are you displacing your anger, frustration, disappointment?)”

사람의 감정이란 숨길 수 없어 어느 순간에 터지게 마련인데, 분노, 좌절, 실망을 혼자서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아다이 애드와 상의하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화가 치밀어 유리창을 박살낸 사진 한 장에서, 기대치를 부정적으로 위반했을 때 나타나는 실망감을 엿볼 수 있다.
텐데이애드닷컴의 광고 ‘놀라는 아이’ 편(2016)과 아다이 애드의 광고 ‘유리창 깨기’ 편(2019)
텐데이애드닷컴의 광고 ‘놀라는 아이’ 편(2016)과 아다이 애드의 광고 ‘유리창 깨기’ 편(2019)
휴메인워치(Humane watch)의 광고 ‘고양이’ 편(2010)에서는 고양이 세 마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라워하는 눈동자가 표현의 핵심 단서다.

“놀랐다(Surprised)”는 헤드라인과 고양이의 눈동자를 절묘하게 연결시켰다. 헤드라인과 보디카피를 따로 쓰지 않고 한 문장으로 연결시킨 흥미로운 구조다.

미국동물보호단체(HSUS: Humane Society of the United States)가 지역의 동물보호소와 나누는 돈이 전체 기부금의 1퍼센트 미만이라는 소식을 듣고 놀랐다는 보디카피를 한 문장으로 강조했다.

나아가 미국동물애호협회는 지역의 동물보호소와 관련되는 단체가 아니다(not)는 사실도 강조했다. 미국동물애호협회를 비판하는 내용을 고양이의 눈동자로 흥미롭게 표현했다.

스위스 맥스 슈즈의 광고 ‘놀람’ 편(2013)에서는 잘 생긴 남성 모델이 등장해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짓고 있는데, 놀랍다는 메시지를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전달했다. 맥스 슈즈(MAX Shoes)는 스위스에서 인기 있는 신발 브랜드의 명칭이다.

모델이 신발로 입을 가리고 있지만 신발 안쪽의 열린 공간을 마치 입을 크게 벌린 듯 배치하고 나니, 놀라움이 극적으로 강조됐다. 여기에 “놀랄 만한 컬렉션(Stunning collection)”이란 짧은 카피 한 줄을 덧붙였다.

짧은 카피지만 모델이 아연실색할 정도로 놀랍다는 표정을 짓고 있으니, 놀랄 만큼 아름다움 신발들을 선별했다는 메시지가 저절로 전달되는 것 같다. 기대 이상으로 좋은 신발이라는 느낌을 전달하기에 충분한 광고였다.

<매드>의 광고 ‘풍자’ 편(1969)에서는 가짜를 풍자하는 “60초 실망”이라는 광고를 게재했다. <매드(MAD)>는 1952년에 창간된 이후 지금도 인기리에 발매되는 미국의 풍자 잡지다.

광고에서는 “60초 실망(The 60-second disappointment)”이라는 헤드라인을 써서 주목을 끌었다. 광고에 출연한 11명 모두가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찍은 흐릿한 사진을 보며 실망스럽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보디카피에서는 ‘팔로라이드’ 컬러 팩 카메라가 흐릿한 사진을 인화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며 그 때문에 좋은 기회를 놓친다고 설명했다. 폴라로이드(Polaroid)의 스펠링을 팔로라이드(Parloraid)로 일부러 틀리게 썼다. 기대치를 부정적으로 위반했을 때의 실망감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뉴질랜드 마마이트의 광고 ‘찡그린 얼굴’ 편(2012)을 보면 여성이 얼굴을 찡그리고 있다. 마마이트(Marmite)는 양조 과정에서 얻은 이스트 추출물로 만든 잼 브랜드인데, 뉴질랜드에서 국민 잼으로 유명하다.

토스트에 발라먹는 스프레드(spread) 잼이지만 갈색에 끈적끈적하며 발효식품 특유의 강한 향도 있어 호불호가 엇갈린다.

독특한 서체로 카피를 이렇게 썼다. “놀라지 마세요. 마마이트는 돌아올 것입니다 (Don’t freak. It’ll be back).” 뉴질랜드의 크라이스트처치 지역에 지진이 일어나 마마이트를 제때에 공급할 수 없게 되자, 곧 돌아올 테니 안심하라는 메시지를 전한 것이다. 마트에서 마마이트를 찾을 수 없을 때의 실망감이 모델의 표정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시계 바늘 방향으로 휴메인워치의 광고 ‘고양이’ 편(2010), 맥스 슈즈의 광고 ‘놀람’ 편(2013), 잡지 <매드>의 광고 ‘풍자’ 편(1969), 뉴질랜드 마마이트의 광고 ‘찡그린 얼굴’ 편(2012)
시계 바늘 방향으로 휴메인워치의 광고 ‘고양이’ 편(2010), 맥스 슈즈의 광고 ‘놀람’ 편(2013), 잡지 <매드>의 광고 ‘풍자’ 편(1969), 뉴질랜드 마마이트의 광고 ‘찡그린 얼굴’ 편(2012)
기대치 위반 효과에서는 기대치에 어긋났을 때 기분이 더 나빠진다는 사실에 특히 주목할 만하다. 기대치에 어긋났을 때의 실망감이 기대하지 않았을 때의 놀라움보다 더 오랫동안 마음을 지배한다는 점에서, 우리네 일상생활에서 스쳐가는 빈 말을 해서 상대에게 기대감을 주는 발언은 삼가는 게 좋겠다.

젊은이들이 자주 입에 올리는 ‘희망 고문’이란 표현도 기대치를 부정적으로 위반할 때와 관련된다. 그렇다면 기대치를 어떻게 관리하는 것이 좋을까?

먼저, 상대방이 어떤 기대감을 갖지 않도록 자신의 발언에 신중해야 한다.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해서 상대방의 기대치를 높인다거나, 어떤 부탁을 단칼에 거절하지 못하고 마치 들어줄 듯 애매모호하게 말하면 상대방이 어떤 기대감을 가질 수 있다.

다음으로, 자신도 상대방의 말을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해석해 기대치를 높이지 않도록 자제해야 한다. 가능하다면 아예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기대치를 상상 속에서 자꾸 높이다보니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면 결국 인간관계가 소원해진다.

다른 사람에게 뭔가를 베풀 때는 베풀고 나서 잊어버려야 한다. 나는 너에게 그렇게 베풀었는데 어떻게 네가 나한테 그럴 수 있느냐며 원망하는 마음도 베풀고 나서 잊어버렸다면 생길 수 없다.

우리나라 부모들이 자식에게 베풀고 나서 자식에게 거는 기대치는 특히 대단한데, 자식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는다면 나중에 가서 자식에 대해 실망하는 일도 없을 듯하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느냐는 식의 하소연도 기대치가 너무 높았기 때문에 나오는 말이다.

베풀고 나서 잊어버렸다면 실망할 일도 없으리라. 그래서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에서도 지나친 기대는 금물이다.

우리 모두가 벌레가 아닌 사람인 이상, 베풀고 나서 깡그리 잊어버리기란 쉽지 않다. 필자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베풀고 나서 잊어버린다는 자세를 훈련함으로써 나중에 실망할 일은 처음부터 만들지 않는 게 좋겠다. 그래야 상대방이 조금만 호의를 베풀어도 놀라워하며 더 행복해질 수 있다.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고 그냥 베푸는 자선 활동이나 기부 행위에서는 기대치 위반 효과가 나타나지 않으니 실망할 일도 없다.

서로에게 크게 기대하지 않는다면 우리 앞에 놀라운 순간이 더 자주 발생할 것이며, 그렇게 되면 행복한 순간도 더 늘어나지 않을까? 기대를 내려놓을수록 행복이 올라가고, 기대를 버릴수록 행복이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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