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희 서원대 교수
김병희 서원대 교수
가정의 달이라는 5월에 어버이날은 부모와 자식 간에 특별한 행복감을 느끼는 것 같다.

어린 자녀를 위해 부모가 베풀기만 하는 어린이날에 자녀가 부모의 마음을 생각하기보다는 그저 즐겁기만 하다.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어버이날에는 부모의 애간장을 태우게 하던 자식들도 이날만큼은 순한 양으로 변한다. 그러니 서로가 느끼는 행복감은 배가될 수밖에 없다.

어버이날을 기념하는 마음은 동서양의 자식이 똑같지만 우리와 달리 서양에서는 어머니의 날과 아버지의 날이 따로 있다. 그때마다 어머니의 날과 아버지의 날을 기념하는 많은 광고가 나온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작은 선물에는 무척 고마워하면서도, 정작 자신을 낳고 길러준 부모님에 대한 고마움은 망각하는 경우가 많다. 자식에게 늘 사랑을 베풀고 있지만 항상 사랑을 받기만 하는 자식은 엄마와 아빠의 중요성을 잘 모른다.

그러다가도 어버이날만 돌아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부모에게도 뭔가 베풀려고 한다. 부모 임장에서는 자식의 그런 면모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일이다.

나이지리아의 광고회사인 후크 크리에이티브(Hook Creative)는 어머니의 날을 앞두고 자체 광고 ‘콧물’ 편(2018)을 집행했다. 굵은 고딕체로 제시한 헤드라인을 보자.

“이것은 역겨운 광고입니다(This Is A Disgusting Ad).” 헤드라인 아래쪽을 보니 누런 콧물을 훔쳐낸 손이 보인다. 첫 느낌에는 좀 역겨워 보이는 이미지다.

보디카피는 이렇다. “광고를 보다보면 결국 당신은 얼굴을 찡그리겠지요. 이제, 엄마가 당신의 점액(콧물)을 빨고 있는 장면을 상상해보십시오. 엄마 입으로 엄청 많이요. 당신의 작은 코를 다치지 않게 하려고요. 오늘 엄마를 기쁘게 해드리세요. 행복한 어머니날.”

아, 엄마가 아이의 콧물을 훔쳐낸 장면이다 싶으니 역겹지 않고 정겹게 느껴진다.

요새 엄마들은 자녀가 콧물을 흘리면 화장지로 코를 닦아주지만, 필자가 어릴 때는 시골에서 비슷한 장면을 자주 목도했다.

코흘리개라는 단어도 노랑말코라는 별명도 요즘은 거의 듣기 어렵지만 1960~1970년대에는 유난히 코를 흘리는 아이들이 많았다.

물론 그 시절에도 아이의 코를 다치지 않게 하려고 입으로 콧물을 빨아들이는 엄마는 없었지만, 엄마 손에 코를 풀라며 손으로 코를 감싸주는 엄마들은 많았다. 아니면 코를 풀라며 엄마 치마폭을 내주기도 했다.

아프리카에서는 엄마들이 한술 더 떠 아예 입으로 빨아주는 모양이다. 이런 장면이 역겨운가? 카피라이터는 그렇지 않다고 강조하려고 ‘역겨운 광고’라는 단어를 일부러 썼으리라.

광고에서는 출산을 기쁘게만 받아들일 수 없는 아프리카에서 역겨운 장면을 드러내 엄마와의 추억을 소환했다.
나이지리아의 후크 크리에이티브 광고 ‘콧물’ 편 (2018)
나이지리아의 후크 크리에이티브 광고 ‘콧물’ 편 (2018)
레바논의 편의점 체인인 알 리파이에서도 아버지의 날을 맞이해 자사 제품을 알리는 광고 ‘피스타치오’ 편(2017)을 집행했다.

견과류 시장의 선두 주자로 유명한 알 리파이(Al Rifai)는 1948년부터 영업을 시작한 레바논을 대표하는 편의점 브랜드다.

헤드라인은 다음과 같다. “제가 말하고 싶어 할 때 늘 거기에 계셨기 때문이죠. 아빠 사랑해요. (For always being there when i needed to talk. Love you dad.).”

아빠와 뭔가를 상의해야 할 때 항상 아빠가 이야기를 들어주었다는 말이다. 이 얼마나 멋진 장면인가. 자녀와 아빠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은 상상만 해도 행복해진다.

헤드라인의 아래쪽에는 견과류인 피스타치오의 껍질만 수북이 쌓여있을 뿐이다. 광고 이미지는 오직 껍질 벌린 피스타치오 너트뿐이다.

여기저기에 버려진 쓰레기를 보고 사람이 많이 모인 흔적을 알 수 있듯이, 얼마나 숱한 이야기를 나누며 피스타치오를 까먹었기에 이토록 많은 껍질이 수북이 쌓였을까 싶다. 아버지와 자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그들의 모습을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그들의 부재가 오히려 더 많은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광고에서는 견과류를 주로 취급하는 알 리파이 브랜드와의 상관성(brand relevance)을 고려해 피스타치오의 껍질을 대화의 매개물로 활용했다.

우리나라 광고에서는 브랜드의 특성을 어버이날에 연결하지 않고 “감사합니다” 또는 “사랑합니다” 같은 감성적인 메시지를 전하는 데에 치중하는 경우가 많은데, 브랜드와의 상관성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광고 효과가 반감될 것이다.
레바논의 알 리파이 광고 ‘피스타치오’ 편 (2017)
레바논의 알 리파이 광고 ‘피스타치오’ 편 (2017)
어버이의 사랑은 그 무엇에 비교할 수 없다. 예컨대, 어머니의 사랑을 2020년의 케냐 사례에서 다시 되돌아보자.

케냐의 한 어머니가 배고픔에 지친 자녀들이 잠들기를 기다리며 냄비에 ‘돌’을 끓여 음식이 없다는 사실을 감추려 한 안타까운 사연이다.

케냐 몸바사에서 홀로 여덟 아이를 키우며 사는 페니나 바하티 킷사오는 남의 집 빨래를 해주며 생계를 꾸려왔지만, 코로나19 사태로 봉쇄 명령이 내려지자 일거리를 잃었다. 킷사오는 음식을 구하기 어려워지자 아이들이 지쳐 잠들기를 바라며 돌을 끓여 식사를 준비하는 시늉을 했다.

아이들도 엄마의 식사 준비가 거짓말이라는 걸 알고 있었을 텐데, 가진 것이 없었기에 돌을 끓여서라도 아이들을 달래고 싶었던 셈이다. 〔(김서영 (2020. 5. 1). “굶주린 자녀 잠들길 기다리며 돌로 요리 시늉한 케냐 엄마.” 연합뉴스〕. 어려운 시절에 우리 어머니들도 우리를 그렇게 키우셨을 것이다.

우리의 어버이날을 떠올리게 하는 광고들을 보면서 무엇이 효도(孝道)인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피스타치오 광고에서는 아버지와 자녀가 친구처럼 지낸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자식이 어릴 때는 부모가 자식에게 친구가 되어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러나 부모님이 연로해지면 자식이 부모에게 친구가 되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서로가 행복을 느끼는 관계다.

좋은 말이지만 아버지와 자녀가 친구가 되기란 생각보다 어렵다. 사실 자식과 아버지는 친구가 아니지 않는가. 세상의 모든 아버지가 자식과 친구처럼 지내고 싶었을 텐데, 오죽했으면 영조와 사도세자의 관계처럼 극한으로 치닫는 사례가 나왔을까 싶다.

그럼에도 부모와 자식 사이의 가장 바람직한 관계는 친구 사이가 되는 것이다. 친한 친구처럼 지낸다면 서로가 얼마나 행복해 하겠는가.

그래서 어버이날이라고 해서 자식이 어떤 의무감에서 하는 형식적인 효도는 하지 말았으면 싶다. 차라리 친구한테 전화하듯 친구 집에 놀러가듯 그런 마음으로 부모를 만난다면 그것이 진정한 효도다.

부모도 친구들과 온갖 수다를 떨듯 자식에게 마음을 열어야 한다. 다만 모든 것을 자식이 원하는 대로 자식의 눈높이에 맞춰주면, 자식이 친구가 되어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엄청난 착각이자 우정의 구걸이다.

부모와 자식이 수다도 떨고 와인도 마시고 바둑도 두며 친구처럼 지내야겠지만, 부모가 자식에게 결코 만만한 친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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