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기능 저해되면 큰일"…"부울경, 다른 지역서 뺏지말고 자생 노력"
"조선업 빅2 체제 바람직…쌍용차 경쟁력 낮아, 회생법원 결단 필요"
퇴임 전 작심발언…"11개 기업 구조조정, 한 일 없다는 건 산은 직원 모독"

최근 사의를 밝힌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2일 새 정부의 대선 공약이었던 산업은행 부산 이전에 대해 다시 한번 강한 어조로 반대 의견을 밝혔다.

이 회장은 이날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산은 지방 이전 논의와 관련해 "산은은 국가 정책 차원에서 굉장히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데, 그 기능이 저해되면 큰 일"이라며 "논리적 토론 없이 주장만 되풀이되고, 껍데기만 얘기되는 상황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지방 이전 주장의 근거가 되는 '지역균형발전론'에 대해서도 "지역균형 발전 취지에 누가 동의하지 않겠나.

다만 국가 전체 발전을 위한 것이어야 하고, 지속 가능해야 한다"며 "특히 부울경(부산·울산·경남)은 박정희 대통령 이후 가장 특혜받은 지역이다.

기간산업이 부울경에 집중돼 있다.

하지만 이제 다른 지역을 좀 도와달라"고 쓴소리를 했다.

심지어 부울경에 "딴 데서 더 뺏어가려고 하지 마시고, 스스로 자생하려는 노력도 하시라"고도 했다.

이 회장은 최근 정권 교체기에 일각에서 제기되는 산업은행의 업무 성과에 대한 낮은 평가에도 불만을 드러냈다.

그는 "지난 5년간 산은이 한 일이 없다, 3개로 쪼개야 한다 등 도가 넘는 정치적 비방이 있다"며 "이는 산은 조직에 대한 모독이고, 어려운 여건에서도 묵묵히 일하는 3천300명 산은 직원과 가족에 대한 모독"이라고 지적했다.

반박을 위해 우선 그는 5년간의 구조조정·경영 실적을 강조했다.

떠나는 이동걸, 산은 부산 이전 반대…"부울경 특혜받은 지역"(종합2보)
이 회장은 "2019년 5월 취임할 당시 정리되지 않은 현안 부실기업이 금호타이어·한국지엠·대우건설·현대상선(현 HMM) 등 10∼15개, 대규모 부실기업만 10여개나 있었다"며 "은행 금고는 텅 비어 자본잠식 직전 수준이었다.

조선·해운업 등에 대한 거액의 대손 비용 등으로 취임 전 3∼4년간 주요 부실기업 구조조정 관련 손실액은 14조5천억원, 당기순손실만 5조5천억원에 이르렀다"고 강조했다.

그는 "하지만 금호타이어, 한국지엠, 대우건설, 두산중공업 등 11개 기업의 구조조정을 완료했다"며 "대우조선해양·쌍용차·KDB생명 3개를 빼고는 확고한 구조조정 원칙을 지키며 다 해결한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2016년 1조3천억원까지 떨어졌던 이익 잉여금은 지난해 7조4천억원까지 늘어 안정화됐고, 2017년 이후 5년간 정부에 지급한 배당과 납부한 법인세만 2조2천102억원에 이른다"고 덧붙였다.

이 회장은 최근 합병이나 매각이 불발된 대우조선해양, 쌍용차의 구조조정 방향에 대한 소신도 밝혔다.

대우조선에 대해서는 "기업 차원이 아니라 산업 차원에서 풀어야 할 문제로, 조선업 차원의 구조조정이 꼭 필요하다"며 "국내 조선 3사를 지탱할 만큼 조선업 대호황이 상당 기간 지속되면 모를까 3사가 공존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닌 만큼 빅2 체제로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박근혜 정부 당시 2015년에도 빅2 체제 개편에 대한 컨센서스(주류 의견)가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 집행을 안 하고 대규모 자금이 들어가는 미봉책으로 끝났다"며 "그 조건으로 합병을 추진했으면 이후 (해외 공정 당국) 승인도 문제 없고 쉽게 끝났을 텐데, 우선 자금이 집행되고 3사 체제가 유지되다 보니 (구조조정이) 어려워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쌍용차와 관련해서는 "경쟁력, 지속가능성이 낮은 만큼 자금 지원만으로 회생하기 어렵다"며 "회생법원이 결단을 내려야 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의 배경에 대해서는 "산은은 은행인 동시에 정부 정책을 금융 측면에서 집행하는 정책기관"이라며 "정부와 정책 철학을 공유하는 사람이 회장직을 수행하는 게 순리"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정부 교체기마다 정책기관장 교체와 관련한 잡음, 흠집 잡기 등이 나타나는데, 이런 소모적 정쟁 행태가 5년 주기로 반복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정책기관장 임기를 대통령 임기와 맞추는 법 개정이 필요하지 않나 싶다"고 덧붙였다.

이 회장은 친문 인사로 알려져 있다.

그는 김대중 정부 시절 청와대 행정관, 노무현 정부 시절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냈고, 한국금융연구원장, 동국대 경영대학 초빙교수 등을 역임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