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곡살인' 사건 피의자 이은해. 연합뉴스
'계곡살인' 사건 피의자 이은해. 연합뉴스
'계곡살인' 사건의 피의자인 이은해씨(31)와 조현수씨(30)에 대한 구속기간이 연장된 가운데 이씨가 남편 윤 모씨(당시 39세)에 대해 가스라이팅(심리적 지배)을 한 정황이 공개됐다.

23일 SBS는 보도를 통해 이은해와 남편 윤씨의 전화통화 녹취와 윤씨가 이은해의 내연남이자 공범인 조현수에게 보낸 메시지 등이 공개됐다.

남편 윤 씨는 피의자 이은해에게 '가스라이팅(심리적 지배)'을 당한 정황이 곳곳에서 확인됐다. '가스라이팅'은 어떤 사람의 심리상태에 조작을 가해 스스로를 불신하게 하고 가해자에 의존하게 하는 심리적 학대를 뜻한다. 범죄학에선 '지배적 착취 관계'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윤 씨는 사망 5개월 전인 2019년 1월 조현수에게 "은해에게 쓰레기란 말 안 듣고 싶어", "정신병자란 소리 안 듣고 그냥 존중받고 싶어", "이제 좀 무서워 은해가 짜증 내고 욕할까봐", "나도 현수처럼 은해에게 인정받고 싶다" 등의 메시지를 보내 고통을 호소했다.

윤 씨는 지인들과의 술자리에서 이은해에게 머리채를 잡히는 등 괴롭힘을 당하면서 고통을 호소했다. 이에 이은해는 "내가 있잖아, 술 먹으면 제일 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막 대하거나 막 괴롭히거나 그래"라며 "내가 오빠를 무시하고 막 그래서 그렇게 오빠한테 그렇게 행동한 게 아니라 그냥 그래"라고 말했다.
8억대 사망보험금을 노리고 남편 A씨를 숨지게 한 혐의로 공개수배된 이은해가 지난 16일 오후 인천지방검찰청으로 압송되고 있다. 사진=뉴스1
8억대 사망보험금을 노리고 남편 A씨를 숨지게 한 혐의로 공개수배된 이은해가 지난 16일 오후 인천지방검찰청으로 압송되고 있다. 사진=뉴스1
이은해는 윤 씨와 찍은 사진에 '넌 벗어날 수 없어'라는 메시지도 적었다. 연봉 6000만원을 받는 대기업 연구원이었던 윤 씨는 이은해와 결혼한지 1년 만에 개인회생을 신청하는 등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렸다.

급기야 윤 씨는 라면 등 생필품을 구입하기 위해 지인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부탁까지 했다. 윤 씨는 이은해에게 전화를 걸어 "돈이 너무 없으니까, 돈이 너무 없으니까"라고 말하며 "빚이 너무 많아"라고 흐느꼈다. 이은해는 "오빠 근데 정말 나 그만 만나고 싶어?"라고 대응하며 가스라이팅을 이어갔다.

이씨와 조씨는 2019년 6월30일 오후 8시24분께 경기 가평군 용소계곡에서 윤 씨에게 다이빙을 강요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윤 씨가 수영을 못한다는 사실을 파악한 뒤, 범행 당일 다이빙을 강요하고 윤 씨가 물에 빠져 있었음에도 구조하지 않아 숨지게 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2019년 2월 강원 양양군 펜션에서 윤 씨에게 복어 정소와 피 등을 섞은 음식을 먹여 숨지게 하려다가 치사량에 미달해 미수에 그친 혐의도 있다. 그해 5월에는 경기 용인시 낚시터에서 윤 씨를 물에 빠뜨려 숨지게 하려다, 윤 씨의 지인이 발견하면서 미수에 그치기도 했다.

이들은 윤 씨가 숨진 뒤 그해 11월 무렵 보험회사에 윤 씨에 대한 생명보험금 8억여원을 청구했다가, 보험사기 범행을 의심한 회사로부터 거절당해 보험금을 수령하지 못했다. 이들은 지난해 12월14일 검찰 조사에 불응해 도주했다. 검찰은 3월30일 이들을 공개수배했다. 이후 공개수배 18일째, 도주 124일째 이들은 경기 고양시 덕양구 한 오피스텔에서 검거됐다.

고은빛 한경닷컴 기자 silverligh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