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법·부정경쟁방지법 등도 변화된 안보환경에 한계점 노출
"적국이라는 틀 벗어나 간첩행위의 주체·대상 새로 규정할 필요"
"국가 흔드는 기술유출에 무기력"…70년 유지 간첩죄 개정될까
1953년 형법 제정 이래 70년 가까이 그대로인 간첩죄를 개정하는 작업이 새 정부 출범을 계기로 탄력을 받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국가 차원에서 보호해야 할 핵심 기술 등이 탈취되는 일을 막으려면 현행 간첩죄 조항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은 가운데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도 국가 핵심 기술 유출 방지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

국익을 크게 좌우할 기밀이나 기술을 보호하려면 70년 전에 짜인 간첩 처벌 체계부터 변화하는 안보 환경에 맞춰 손질해야 한다는 데 전문가들은 대체로 동의한다.

현행 간첩죄 조항은 처벌 대상이 '적국'으로만 명시돼 있다.

적국이 아닌 국가의 간첩행위에 대해 처벌할 수 없고, 간첩행위의 구체적 객체 등도 명기되지 않아 일일이 판례에 따라야 하는 실정이다.

2015년에는 중국인에게 군사기밀을 유출한 국군기무사령부 소속 해군에게 간첩죄를 적용할 수 없다는 점을 두고 논란이 일기도 했다.

당시 국회에 출석한 한민구 전 국방부 장관은 법 개정을 추진할 의사가 있느냐는 의원 질의에 있다고 답하기도 했으나, 관련 법 개정안은 번번이 처리가 미뤄져 결국 국회 임기가 끝나자 자동 폐기됐다.

간첩죄 개정안은 2011년 민주당 송민순, 2013년 민주당 홍익표, 2014년 자유한국당 이만우, 2016년 자유한국당 이철우, 2016년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의원이 차례로 발의했다.

모두 '적국'을 '외국 또는 외국인의 단체'로 개정하는 내용이었다.

그보다 앞서 2004년에도 국가보안법 폐지안과 맞물려 형법 개정안에 간첩죄 적용 범위를 적국에서 외국으로 바꿔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지만 보수 진영의 우려 섞인 반대에 부딪히기도 했다.

북한은 국가가 아니므로 북한을 위한 간첩행위를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이 없어 이에 대한 처벌의 공백이 발생한다는 주장이었다.

반면, 찬성하는 쪽에서는 대법원이 간첩죄에 한해 예외적으로 북한을 국가에 준해 처벌 가능하다고 판결하고 있으므로 대법원 판례로 충분히 북한을 처벌할 수 있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하지만 오랜 세월 간첩죄가 개정되지 못한 데 따르는 공백은 이미 여러 문제점으로 드러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우선 산업 스파이 등 시대 변화에 따라 새로 발생한 다양한 위협 요인으로부터 국가 안전을 보장하기 힘들다는 의견이 많다.

현행 간첩죄에서 규정한 적국의 개념은 선전포고 또는 교전 상태를 전제로 하는 것이어서 단속 근거로 삼기에는 동떨어진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유환익 전국경제인연합회 상무는 10일 "과거와 달리 산업기술은 국가의 기간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산업기술 유출에 대한 적극적 처벌이 모자라다"며 "국가 이익에 큰 영향을 미치는 기술을 지키려면 시급한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재현 오산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달라진 세계를 고려하면 지금 우리나라를 위협하는 건 국가에 한정되지 않고 테러단체나 반국가단체 등도 포함된다.

이런 부분도 추가하는 식으로 법 개정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당국은 국가보안법, 군형법상 간첩죄, 군사기밀보호법,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산업기술 유출 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 등을 활용해 국익을 훼손하는 기밀 유출 행위를 처벌해왔지만 한계가 존재한다.

국가보안법의 틀을 따르면 외국이나 외국 정보기관의 간첩 활동이 포착됐다고 해도 반국가단체와 연계되지 않으면 처벌이 불가하다.

군형법상 간첩죄는 군인에게만 적용되며 객체는 군사상 기밀에 한정되는 데다 처벌 규정이 사형뿐이다.

군사기밀보호법도 형식적 군사기밀만을 보호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군사기밀로서 보호 가치가 있는 사안인데도 누설한 사람을 처벌할 수 없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은 주로 회사 내부 관계자의 영업비밀 누설 행위를 처벌할 때 적용돼 왔다.

국가적 차원의 기밀·기술 보안을 뒷받침할 형법 체계로 보기에는 부족하다는 평가다.

산업기술 유출 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역시 외국 세력에 의해 행해지는 국가안보 차원의 산업스파이 활동에 대처하기는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상겸 동국대 법학과 교수는 "지금 세상에서는 간첩의 활동 범위가 온·오프라인 가리지 않고 확산한다.

일반인도 얼마든지 간첩행위를 할 수 있는 시대"라며 "국민의 이익을 고려하는 방식으로 엄격하고 구체화한 조항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은 "간첩죄를 개정한다면 '적국'을 '외국'과 '외국인 단체'로 바꾸기보다 국적 없는 해커 등을 고려해 '세력'으로 고쳐야 한다.

해커 같은 경우는 단독으로도 행위를 할 수 있는데, '세력'으로 표기하면 그런 것까지 다 포함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경찰 측도 새 정부에서 관계부처, 국회 등과의 협의를 거쳐 개정안이 발의되는 데 주력할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