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 "범죄의 증명이 없는 때에 해당해 무죄를 선고한다"

70여 년 전 제주4·3사건 당시 군사재판을 받고 형무소로 끌려갔다가 행방불명된 희생자들이 첫 직권 재심 공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아 누명을 벗었다.

제주4·3 직권재심 첫 공판서 20명 전원 무죄
제주지법 형사4-1부(4·3재심 전담재판부·장찬수 부장판사)는 29일 오전 내란죄와 국방경비법 위반 등으로 옥살이한 고(故) 고학남 씨 등 20명의 직권 재심 사건 첫 재판을 열고 무죄를 선고했다.

앞서 올해 초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전면 개정되면서 1948년에서 1949년 사이 고등군법회의 명령서에 기재된 희생자들에 대해서는 피해자 당사자가 아니라 검찰이 직권으로 재심을 청구할 수 있게 됐다.

이날 광주고검 소속 제주4·3사건 직권 재심 권고 합동수행단은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하기 직전 공소사실을 입증할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고씨 등 20명에 대해 무죄를 구형했다.

이어 재판부는 특수한 사항을 고려해 검찰 구형 후 이례적으로 곧바로 고씨 등 20명에 대해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공소사실을 입증할 증거가 없다"며 "이는 범죄의 증명이 없는 때에 해당해 피고인들에 대해 각 무죄를 선고한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삶이 소중함에도 피고인들은 영문도 모른 채 극심한 이념대립으로 목숨을 빼앗겼다"며 "그들은 현재 사는 이들에게 말하고 있다.

당신은 설워할 봄이라도 있었겠지만…."이라며 허영선 시인의 시구절로 첫 직권 재심 재판 소회를 밝혔다.

무죄가 선고되자 양두봉 씨의 조카 양상우 씨와 허봉애 씨 딸 허귀인 씨가 유족 대표로 발언하는 시간을 가졌다.

양씨는 "백부님은 당신의 생일쯤인 음력 8월 그믐날, 폭도 소식을 듣고 담장을 넘어 사라진 후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셨다"며 "조부께서는 그때만 되면 생일상을 차려놓고 목놓아 우셨다"고 눈물을 훔쳤다.

양씨는 "조부님께서 한을 품고 돌아가셨는데 오늘부터는 부디 그 한을 풀고 마음의 위로를 얻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허씨는 "오늘 이 자리에 와서야 아버지 죄명이 내란죄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됐다.

아버지는 절대 그럴 분이 아니시다"며 "오늘 무죄가 선고돼 다행이지만, 한편으로는 돌아가신 어머니가 이 내용을 함께 듣지 못한 것이 슬프다"고 밝혔다.

제주지법은 곧이어 두 번째로 직권 재심이 청구된 고(故) 김경곤 씨 등 수형인 20명에 대한 공판을 진행한다.

이날 오후 2시에는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전면 개정 이후 처음으로 특별재심이 결정된 4·3 생존희생자 고태명(90) 씨 등 33명에 대한 공판이 예정됐다.

dragon.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