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녹지원서 尹 기다리며 '예우'…떨어져 걷던 두 사람, 화기애애한 덕담
와인 반주 만찬서 반려견 이야기까지…文, 尹에 넥타이 선물-尹 "많이 도와달라"
"흉금 털어놓고 얘기"…조국·MB사면 등 껄끄로운 주제는 피해가
"성공 기원" "잘된정책 계승"…171분 최장회동, 극적합의는 없었다(종합)
"정당 간에 경쟁할 수는 있어도 대통령 간에 성공을 기원하는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 (문재인 대통령) "잘 된 정책은 계승하고, 미진한 정책은 개선해 나가겠습니다.

"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8일 오후 청와대 상춘재에서 한 만찬 회동은 '구원'과 성사되기까지의 난관이 무색하듯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

대선이 치러진 지 19일 만에 이뤄져 역대 신·구 권력의 회동 중 가장 늦은 만남이었지만, 흉금을 털어놓고 이야기를 나눴다는 게 회동에 배석한 윤 당선인 측 장제원 비서실장의 설명이다.

두 사람은 오후 5시 59분에 만나 오후 8시 50분에 헤어져 2시간 51분, 171분간 함께 있었다.

역대 대통령과 당선인 간 회동 중 한 자리에서 가장 길게 이뤄진 회동이다.

장 실장은 회동 후 통의동 인수위 브리핑에서 회동이 길어진 이유를 묻는 말에 "두 분이 의견의 다름이 없이 국민 걱정을 덜기 위해 노력하자고 한 것"이라고 답변했다.

상춘재에서 녹지원을 함께 걸은 시간 등을 제외하면 만찬 시간은 2시간 36분이라고 장 실장은 전했다.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의 대면은 2020년 6월 청와대에서 열린 반부패정책협의회 이후 21개월 만이다.

당시 윤 당선인은 검찰총장 자격으로 참석했다.

"성공 기원" "잘된정책 계승"…171분 최장회동, 극적합의는 없었다(종합)
◇ 녹지원에 먼저 나간 문 대통령…윤 당선인에 '파격적 예우'
만찬 시각인 오후 6시를 2분 앞두고 문 대통령은 유영민 대통령 비서실장과 함께 만찬장인 상춘재 앞 녹지원에 나가 윤 당선인을 기다렸다.

청와대 안에서는 그만큼 문 대통령이 예우를 다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2019년 6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방문했을 때 만찬 장소였던 상춘재로 초청한 것도 그러한 예우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5시 59분에 윤 당선인을 태운 차가 문 대통령 앞에 멈춰 섰고, 문 대통령은 차에서 내리는 윤 당선인과 악수하며 회동이 시작됐다.

문 대통령이 오른손을 내밀자 윤 당선인이 가벼운 묵례 후 양손으로 이를 맞잡았다.

문 대통령은 감색 양복에 청색 사선 넥타이를, 윤 당선인은 감색 양복에 분홍색 넥타이를 맸다.

두 사람은 회동 배석자인 유 실장, 장 실장과 함께 상춘재 앞 잔디밭인 녹지원을 걸었다.

양측의 어색한 기류를 반영한 듯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은 다소 떨어져 걷기도 했다.

간혹 미소를 보이긴 했으나 전체적으로는 다소 긴장된 듯한 표정으로 대화했다.

문 대통령은 "여기가 '우리 최고의 정원'이라고 극찬을 하셨던 (곳)"이라며 "이 너머에 헬기장이…"라고 말했다.

윤 당선인은 여민관을 지날 때 "대통령을 모시고 이쪽 어디서 회의를 한 기억이 난다"며 검찰총장 시절 청와대를 찾았던 때를 떠올렸다.

윤 당선인이 청와대를 찾은 것은 2018년 7월 검찰총장 임명식, 2019년 11월과 2020년 6월 열린 반부패정책협의회에 이어 이번이 네 번째다.

"성공 기원" "잘된정책 계승"…171분 최장회동, 극적합의는 없었다(종합)
◇ 윤 당선인 "도와 달라" 문 대통령 "제 경험 활용해 달라"
취재진을 물리고 상춘재에 들어선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은 덕담을 주고받았다.

문 대통령이 "당선을 진심으로 축하한다"며 "이것은 의례적 축하가 아닌 진심으로 축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당 간에 경쟁할 수는 있어도 대통령 간 성공을 기원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라고 강조했다.

감사의 뜻을 밝힌 윤 당선인은 "국정은 축적의 산물"이라고 밝혔다.

이는 회동 4시간 전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나온 문 대통령의 발언에 화답하는 메시지로 읽혔다.

문 대통령은 이날 회의에서 "현재는 과거로부터 축적된 역사"라며 "아직도 우리는 뒤떨어진 분야가 많은데, 어느 정부에서든 더 발전시켜야 할 과제"라고 했다.

대통령이 바뀌어도 정권을 관통하는 국가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은 이어져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윤 당선인 역시 회동에서 "잘 된 정책은 계승하고 미진한 정책은 개선해 나가겠다"며 "많이 도와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그러자 문 대통령은 "제 경험을 많이 활용해 달라"면서 "돕겠다"고 대답했다.

이 같은 분위기는 이번 회동의 가장 첨예한 의제로 예상됐던 대통령 집무실 이전과 관련해 견해차를 좁히는 데 기여한 듯했다.

문 대통령은 "집무실 이전 지역 판단은 차기 정부 몫"이라며 "현 정부는 정확한 이전 계획에 따른 예산을 면밀히 살펴 협조하겠다"고 말했다.

"성공 기원" "잘된정책 계승"…171분 최장회동, 극적합의는 없었다(종합)
◇ 한우갈비에 레드와인…자리서 일어나 서로 술잔 채워주기도
만찬에는 주꾸미, 새조개, 전복 등으로 구성된 계절 해산물 냉채와 해송 잣죽, 한우갈비와 더운 채소, 금태구이와 생절이, 봄나물 비빔밥, 모시조개 섬초 된장국, 과일, 수정과, 배추김치, 오이소박이, 탕평채, 더덕구이 등이 올랐다.

반주로 곁들일 레드와인이 준비돼 대화의 분위기가 무르익고 허심탄회하게 이야기가 오간 것으로 알려졌다.

장 실장은 "과거 인연 등을 주재로 반주 한두잔을 곁들여 만찬했다"고 전했다.

실제로 만찬장 밖에서 대기하던 참모들은 안에서 흘러나오던 큰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은 서로의 술잔도 채워줬다.

만찬장에 마련된 원탁 테이블이 컸던 탓에 자리에서 일어나 상대가 앉아 있는 자리까지 걸어가서 와인을 따라줬다는 것이다.

만찬 중에는 과거의 인연을 비롯해 서로의 반려견과 같은 가벼운 주제를 놓고도 이야기가 오갔다.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은 공교롭게 '토리'라는 이름을 가진 반려견을 키우고 있다.

문 대통령의 '토리'는 2017년 대선 직후 입양돼 '퍼스트 도그'가 됐고, 윤 당선인의 '토리'는 2012년에 유기견 보호단체로부터 입양돼 지금까지 함께하고 있다.

다만 두 사람의 관계 악화의 결정적 계기가 됐던 조국 사태나 이명박 전 대통령 사면 문제 등 다소 껄끄로운 주제는 구체적으로 테이블에 오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은 2시간을 훌쩍 넘긴 만찬을 마치기 전 윤 당선인에게 넥타이를 선물했다.

화합의 의미를 담아 감색 바탕에 흰색 사선이 들어간 넥타이인 것으로 전해졌다.

문 대통령은 대선을 앞둔 지난해 10월 당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청와대로 초청해 차담을 했을 때도 감색 바탕에 빨강, 노랑, 파랑 사선이 들어간 넥타이를 선물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은 윤 당선인에게 넥타이를 주며 "성공하시길 빈다"고 말한 뒤 "제가 도울 게 있으면 언제든 연락을 달라"고 말했다.

이에 윤 당선인은 "건강하시길 빈다"고 인사를 건넸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