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미술관서 기념전 '노실의 천사' 24일 개막
유족 기증 작품 등 240여점 전시…방탄소년단 RM 소장품도
영원을 추구한 고독한 예술가…탄생 100주년 조각거장 권진규(종합)
"진흙을 씌워서 나의 노실에 화장하면 그 어느 것은 회개승화하여 천사처럼 나타나는 실존을 나는 어루만진다.

"
한국 근현대조각의 선구자 권진규(1922~1973)가 1972년 발표한 시 '예술적 산보_노실의 천사를 작업하며 읊는 봄, 봄'의 한 구절이다.

노실(爐室)은 가마 또는 가마가 있는 방을 뜻한다.

'노실의 천사'란 그가 작업을 통해 구현하고자 했던 이상, 순수한 정신적 실체로 해석된다.

권진규는 구상과 추상, 고대와 현대, 동양과 서양, 여성과 남성, 현세와 내세의 경계를 넘나들며 평생 '노실의 천사'를 구하고자 했다.

지금은 한국 근대 조각을 완성하고 현대 조각을 개척한 거장으로 평가받지만, 그는 생전에는 제대로 인정받지 못해 '비운의 천재 조각가'로도 불렸다.

자신의 작품에 대한 무관심과 생활고 등으로 고통받던 그는 1973년 5월 작업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세상을 떠난 후에도 시련은 계속됐다.

유족들이 권진규미술관 건립을 추진했으나 번번이 좌절돼 그의 작품은 오랜 세월 자리를 찾지 못하고 떠돌았다.

유족 측은 미술관 건립을 조건으로 한 기업에 작품을 일괄 양도했으나 갈등이 빚어졌고, 소송을 거쳐 되찾아 지난해 141점을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했다.

서울시립미술관은 24일부터 서소문본관에서 권진규 탄생 100주년과 유족들의 작품 대량 기증을 기념하는 전시 '노실의 천사'를 개최한다.

1950년대부터 1970년대에 이르기까지 그의 조각, 회화, 드로잉과 아카이브 등 총 240여점을 선보이는 대규모 전시다.

동물상, 여성 두상과 흉상, 자소상, 부처와 예수상, 승려상, 기물 등 다양한 작품과 자료가 전시된다.

작가의 주요 제작 기법인 테라코타와 건칠 작품 제작 과정도 소개한다.

출품작에는 유족 기증품 외에 기관과 개인 소장자에게 대여한 작품도 있다.

미술애호가로 알려진 방탄소년단 멤버 RM의 소장품도 포함돼 눈길을 끈다.

1965년께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말'로, RM은 지난 연말 자신의 SNS에 이 작품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영원을 추구한 고독한 예술가…탄생 100주년 조각거장 권진규(종합)
전시는 작가의 불교적 세계관을 반영해 '입산'(1947~1958), '수행'(1959~1968), '피안'(1969~1973)으로 구성했다.

'입산'은 1947년 성북회화연구소 시절부터 일본 무사시노미술학교에서 수학하던 시기다.

'수행'은 귀국해 손수 작업실을 짓고 수행자처럼 생활하며 반구상 부조 작품과 여성 흉상 등을 제작하던 때다.

'피안'은 전통 재료인 건칠을 활용한 작품에 매진한 시기다.

1971년 불상, 비구니 등으로 전시회를 개최했으나 반응이 좋지 않아 좌절한 그는 작업보다는 불교에 침잠하다가 원하는 일들이 무산되면서 결국 세상을 등졌다.

권진규는 흔히 리얼리즘 조각가로 알려져 있으나, 그가 추구했던 것은 사실적인 것이나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결코 사라지지 않는 영혼, 영원성임을 전시는 보여준다.

백지숙 서울시립미술관장은 "권진규는 어떤 사조나 분위기에도 휩쓸리지 않고 확고하게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한 예술가"라며 "그의 작품에 내재한 동시대적 의미를 편견 없이 들여다보고자 했다"고 말했다.

전시는 5월 22일까지이며, 광주시립미술관에서 7월 26일부터 순회전이 이어진다.

다양한 전시 연계 프로그램도 마련됐다.

다음 달 특별 공연과 학술대회가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열린다.

권진규가 직접 짓고 작품 활동을 했던 성북구 동선동 '권진규 아틀리에'는 매주 토요일 특별 개방 등 기념행사를 진행한다.

작가의 조카인 허경회 권진규기념사업회 대표는 최근 권진규의 삶과 예술을 담은 평전을 펴냈다.

서울시립미술관은 내년에는 남서울미술관에 권진규 상설 전시장을 마련할 예정이다.

영원을 추구한 고독한 예술가…탄생 100주년 조각거장 권진규(종합)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