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성 청암대 교수 주장…"민족성 논리로 차별화된 폭력 행사"
"일제 경찰의 강압적 위생 행정, 전염병 통제 효과 없었다"
일제가 조선인을 위생 관념이 부족한 민족으로 여겨 한반도에서 강압적 위생 행정을 펼쳤으나, 전염병 통제 효과는 거의 없었다는 주장이 나왔다.

13일 학계에 따르면 최재성 청암대 연구교수는 학술지 '한국독립운동사연구' 최신호에 발표한 논문에서 일제가 한반도에서 위생 관념 보급을 위해 시도한 강압적 활동과 결과를 분석했다.

최 교수는 "일제는 당시 유행한 사회진화론과 우생학 등에 따라 한민족을 열등한 민족으로 간주했고, 경찰이 강압적으로 위생 업무를 다루게 했다"며 일제 경찰은 폭력적 '청결 방법', '검병적 호구조사', 처벌과 강제 주사를 시행했다고 지적했다.

청결 방법과 관련해 최 교수는 "1907년 일본 왕자가 방한할 무렵 콜레라 환자가 발생하자 '소독적 대청결법'을 실시했다"며 "조선총독부를 설치한 뒤에는 경찰서가 봄과 가을에 통풍과 건조, 석회 살포, 하수도 준설 등을 지시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일제는 청결 방법 초기부터 '계엄령적'으로 임했다"며 "청결 방법 시행 과정에서 헌병과 경관이 조선인 농민에게 구타와 모욕을 가하기도 했다"고 강조했다.

검병적 호구조사는 전염병 환자를 조기에 발견하기 위한 제도였다.

최 교수는 "조사 주체는 주로 경찰관이었고, 의사가 동행하기도 했다"며 "환자를 발견하면 격리시설로 보내 치료하게 하고, 사망 환자는 화장하며, 환자 주변 물건은 소각하도록 했다"고 짚었다.

이어 도로·개천 오염, 음식물 위생 불량, 채소 세척과 재배 불결, 위생 법령 위반, 종두 미접종과 천연두 발생 숨김 등이 적발되면 처벌했다고 덧붙였다.

최 교수는 이 같은 정책에 대해 "일제는 호구조사 이유가 조선인의 발병 사실 은폐에 있다고 강변했으나, 잘못된 진단으로 고통을 겪는 사람도 있었다"며 "위생 방해 행위 처벌과 예방주사 접종에도 강제성이 있었다"고 분석했다.

그는 일제가 '민족성'이라는 논리로 한반도에서 차별화된 폭력을 행사했지만, 전염병 발병을 낮추는 효과는 사실상 없었다고 주장했다.

최 교수는 조선총독부 연보 등을 근거로 한반도 내 전염병 환자가 1911년 6천600여 명에서 1941년 2만4천여 명으로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1911년 이후 전염병 환자와 사망자는 1920년대 잠시 줄어들기도 했으나, 대체로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다.

그는 "일제 경찰이 전염병 발병 원인으로 파악한 조선인의 위생 관념 박약은 일본인의 높은 발병률을 볼 때 근거 없는 편견이었다"며 "전염병은 민족성보다는 교육과 경제력의 문제였다"고 결론지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