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여 년 전 팬데믹서 오늘을 읽다
2006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오르한 파묵(70)이 새로운 장편소설 《페스트의 밤》(민음사)으로 돌아왔다.

지난해 터키에서 출간된 이 소설은 1901년 오스만제국 시절 민게르라는 가상의 섬에 페스트가 퍼지면서 발생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정통 기독교인이자 항구도시 이즈미르에서 성공적으로 페스트를 박멸한 유능한 방역 전문가가 파견되지만 섬에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살해당한다. 술탄 압뒬하미트 2세는 다시 이슬람교도 의사를 보내지만 행정부의 무능, 제재 조치를 따르지 않는 사람들로 인해 방역은 실패로 돌아간다. 결국 섬은 봉쇄되고, 이제 스스로 전염병을 물리칠 방법을 찾아야 한다.

파묵은 2016년부터 이 소설을 집필했다. 이야기를 마무리 지을 무렵 코로나19가 터졌고, 그는 작품의 상당 부분을 다시 썼다. 100여 년 전 이야기를 다루지만 오늘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강경한 방역을 강요하는 정부, 방역을 거부하고 더 나아가 전염병을 믿지 않는 사람들, 이슬람교와 기독교, 상류층과 노동계급, 연결된 이웃과 고립된 이웃 등 전염병이 퍼지면서 나타나는 각기 다른 양상을 세밀하게 묘사한다. 이를 통해 파묵은 전염병에 대해 사람들이 각자 서 있는 위치에 따라 어떻게 다르게 반응하는지, 또 국가가 그 속에서 어떻게 대응하고 진화하는지 보여준다.

파묵은 문학성과 대중성을 두루 갖춘 작가다. 이 책에서도 그는 역사소설 같기도 하고, 탐정소설 같기도 한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들려준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