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수(喜壽·만 77세)를 맞은 이해인 수녀가 불안과 우울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을 위로하는 시 편지 《꽃잎 한 장처럼》(샘터)을 펴냈다. 코로나가 시작된 2019년 말 이후 쓴 신작 시 30편과 산문 등을 담았다.

나이 듦과 죽음에 대한 성찰을 주제로 한 시들이 특히 눈길을 끈다. ‘거울 앞에서’라는 시에서 그는 ‘아주/오랜만에/거울 앞에 서니/마음은 아직/열일곱 살인데/얼굴엔 주름 가득한/70대의 한 수녀가 서 있네’라고 썼다. 죽음에 대해 누구나 갖는 두려움을 솔직하게 털어놓기도 한다. ‘행복한 이 세상을 두고/어떻게/저세상으로 떠날까/문득 두렵다가/그 나라에는/더 큰 행복이 나를/기다리고 있을 텐데 생각하며/스스로 위로하다/웃고 또 웃고……’(‘행복 일기’ 중)

하지만 죽음의 무게에 짓눌리지는 않는다. ‘시간의 새 얼굴’에서 그는 ‘시간은 언제나 살아서/새 얼굴로 온다/빨리 가서 아쉽다고/허무하다고 말하지 않고/새 얼굴로 다시 오는 거라고/살아있는/내가 웃으며 말하겠다’고 삶을 긍정한다.

코로나는 사람들에게 일상의 소중함을 일깨웠다. 행복은 거창한 데에만 있는 게 아니라 일상에서 당연한 듯 누려왔던 것의 소중함을 깨달으면서 발견할 수 있다고 시인은 조언한다.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우리 그냥/오래오래/고맙다는 말만 하고 살자/이 말 속에 들어 있는/사랑과 우정/평화와 기도를/시들지 않는/꽃으로 만들자’(‘고맙다는 말’ 중)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