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선관위가 왜 이래
1960년 3·15 부정선거에 사용된 수법은 지금 봐도 기가 찰 노릇이다. 죽은 사람 유권자 명부에 올려놓기, 고의 정전 후 투표함 바꿔치기, 야당 표에 인주 묻혀 무효표 만들기 등 기상천외한 방법들이 동원됐다. 문맹자를 돕는다는 구실로 자유당에 매수된 조장이 3~5인씩 조를 짜 투표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기붕 부통령 후보의 경우 일부 지역에선 득표율이 100%를 넘는 어처구니없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런 선거 부정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만든 기구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다. 4·19 혁명 후 제2공화국의 3차 개헌 때 헌법기관으로 탄생했다. 선관위는 그 후 이런저런 시비에 휘말리기도 했지만, 62년 역사상 문재인 정부 때처럼 논란의 중심에 선 적은 없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자신의 선거 캠프 참모 출신인 조해주 씨를 선관위 상임위원에 임명한 것이 발단이 됐다. 중립 의무가 생명인 선관위 핵심 자리에 현직 대통령선거 참모를 앉힌 것은 유례를 찾기 힘든 일이다. 게다가 인사청문회마저 건너뛰면서 더 따가운 눈총을 받게 됐다.

선관위는 작년 4·7 재보궐선거 때 국민의힘이 현수막·피켓에 ‘내로남불’ ‘위선’ ‘무능’ 등의 단어를 쓰는 것을 금지해 정치 편향성 논란을 일으켰다. 이런 단어들이 특정 정당(더불어민주당)을 떠올리게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던 선관위가 이번 3·9 대선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한다는 취지 아래 자극적인 문구가 들어간 현수막·피켓 사용까지 허용하는 쪽으로 방침을 바꿨다. 민주당의 ‘살아 있는 소 가죽을 벗기는 세력들에 나라를 맡기겠습니까’ ‘청와대를 굿당으로 만들 순 없습니다’ ‘무당도 모자라 신천지가 웬 말이냐’라는 문구를 허용하고, 국민의힘의 ‘법카로 산 초밥 10인분, 소고기는 누가 먹었나’ ‘전과 4범은 안 됩니다’ ‘쌍욕 불륜 심판하자’는 표현도 허용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180도 방향 선회는 조 전 상임위원 연임 시도에 따른 선관위 직원들의 집단반발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문 대통령이 선관위 사상 처음으로 임기 만료된 상임위원을 연임시키자, 선관위 전 직원 2900명이 반대해 결국 조 전 상임위원이 물러났다. 이런 분위기에서 또다시 편향성 논란에 휩싸이는 것을 내부적으로 상당히 의식한 듯하다. 그 어느 때보다 첨예한 대선 국면에서 그나마 ‘영혼 있는 공무원’들이 눈을 부릅뜬 결과라고나 할까.

윤성민 논설위원 sm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