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적 도핑 조작 스캔들로 '러시아' 대신 OAR·ROC로 3회 연속 출전
세계반도핑기구의 강력 징계 요구에도 솜방망이 징계로 도핑 근절 요원
[올림픽] 끊이지 않는 러시아 도핑 추문…IOC·CAS 미온 대응도 한몫
국제 종합 스포츠대회에서 러시아와 도핑 추문이 한 묶음으로 거론된 게 벌써 5년째다.

이번에는 러시아 무대를 넘어 피겨스케이팅의 차세대 여제로 불리는 카밀라 발리예바(16)마저 불법 약물 복용 의혹에 휘말렸다.

그간 도핑 위반 선수로 언급된 러시아 선수 중 최상위급 선수여서 충격이 크다.

러시아 언론은 10일 발리예바의 도핑 샘플에서 협심증 치료제로, 흥분제로도 사용되는 금지 약물 성분 트리메타지딘이 검출됐다고 보도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국제빙상연맹(ISU) 등은 법적인 문제로 현재 논의 중이라며 발리예바의 도핑 의혹에 말을 아꼈다.

조만간 결론이 나오겠지만, 발리예바가 불법 약물을 사용한 것으로 밝혀진다면 러시아는 도핑 스캔들 국가라는 오명을 또 들어야 한다.
[올림픽] 끊이지 않는 러시아 도핑 추문…IOC·CAS 미온 대응도 한몫
도핑과 관련해 국제 사회에서 '악당'으로 찍힌 러시아는 2018 평창 동계올림픽, 2020 도쿄하계올림픽,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희한한 이름으로 출전했다.

평창 대회 때는 '러시아출신올림픽선수들'(Olympic Athlete from Russia·OAR)로, 지난해 도쿄 대회와 올해 베이징 대회에서는 '러시아올림픽위원회'(Russia Olympic Committee·ROC) 유니폼을 입었다.

소속명에 러시아가 들어갔다고 해 같은 러시아가 아니다.

러시아라는 공식 국가명으로 출전해야 기록도 러시아의 이름으로 올림픽에 남는다.

분명 러시아 선수들이 남긴 성적과 기록이지만, OAR, ROC란 소속으로 뛰면 올림픽 이력은 그 이름으로 등록된다.

러시아의 도핑 스캔들을 참다못한 국제기구들의 징계로 OAR, ROC라는 명칭이 올림픽에 등장했다.
[올림픽] 끊이지 않는 러시아 도핑 추문…IOC·CAS 미온 대응도 한몫
캐나다 변호사 리처드 맥라렌은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하계올림픽 직전에 발표한 보고서에서 2011∼2015년 30개 국제 대회에 출전한 러시아 선수 1천명이 소변 샘플을 바꾸는 수법으로 도핑 결과를 조작했다며 러시아의 조직적이며 광범위한 불법 금지약물 복용 실태를 폭로했다.

러시아반도핑연구소 소장을 지낸 그리고리 로드첸코프 박사는 러시아의 안방에서 열린 2014 소치동계올림픽에선 도핑 조작이 더욱 노골적으로 벌어졌다고 폭로했다.

국제사회는 즉각 러시아를 압박했다.

맥라렌 보고서를 토대로 IOC와 국제패럴림픽위원회(IPC)는 리우올림픽 육상과 역도 종목, 리우 패럴림픽 전 종목에서 각각 러시아 선수들의 참가를 불허했다.

IOC는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러시아의 조직적인 도핑 결과 조작을 인정해 2017년 12월, 국가올림픽위원회(NOC)인 러시아올림픽위원회의 자격을 정지했다.

그러면서 러시아 국가 차원의 평창 동계올림픽 선수단 파견을 금지하되 엄격한 약물 검사를 통과한 '깨끗한' 선수들만 OAR 소속으로 출전토록 했다.
[올림픽] 끊이지 않는 러시아 도핑 추문…IOC·CAS 미온 대응도 한몫
도핑 문제에 있어서는 IOC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하는 세계반도핑기구(WADA)는 러시아반도핑위원회(RUSADA) 활동이 국제반도핑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4년간 러시아의 주요 국제 스포츠대회 출전 금지를 2019년 12월에 결정했다.

러시아가 WADA의 결정에 강력하게 이의를 제기해 최종 결정은 스포츠중재재판소(CAS)의 몫이 됐다.

CAS는 2020년 12월, 러시아의 도핑 샘플 조작 혐의를 인정해 2년간 주요 국제스포츠대회 참가를 제한하는 징계를 확정했다.

WADA의 4년 징계를 절반으로 줄인 것이다.

이에 따라 러시아는 올해 12월 16일까지 올림픽, 월드컵 축구대회에서 러시아라는 국명을 사용할 수 없다.

나라를 대표하는 선수들에게 국가명은 물론 국가(國歌), 국기(國旗)를 사용할 수 없도록 한 징계만큼 모욕적인 것은 없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굴욕적인 결정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런 수모를 몇 년째 겪고도 러시아와 도핑의 고리는 단절되지 않았다.

모멸감을 느꼈다고 대외적으로 울분을 토했지만, 세계 스포츠 무대에서 완전히 배척당하진 않았던 덕분이다.

좀처럼 끊이지 않는 러시아 도핑 조작을 근절하기 위해 미국과 영국 등 서방국을 중심으로 한 반도핑기구는 러시아 선수들의 올림픽 등 국제대회 완전 배제를 IOC에 요구해왔다.

출전 기회 박탈이라는 강수만이 도핑 위반의 싹을 잘라낼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스포츠를 통한 세계 평화를 목표로 내건 IOC는 선의의 피해자는 구제해야 한다며 약물 검사를 통과한 러시아 선수들은 올림픽 등에 출전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줬다.
[올림픽] 끊이지 않는 러시아 도핑 추문…IOC·CAS 미온 대응도 한몫
WADA의 결정을 2년으로 축소한 CAS의 결정이 나왔을 때도 러시아는 반성보다는 불법 약물 복용 이력이 없는 자국 출신 선수들의 출전 길이 열렸다며 2년 제재를 '승리'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그만큼 WADA를 위시한 반도핑 국제단체와 러시아의 인식 차이가 크다.

IOC와 CAS의 미온적인 대응이 사태 해결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시각도 많다.

IOC는 CAS의 결정에 따라 ROC 선수들에게 도쿄와 베이징 올림픽에서 국기와 국가 등을 못 쓰게 하면서도 러시아 국기를 상징하는 빨강, 하양, 파랑의 삼색을 활용한 유니폼을 제작하도록 승인했다.

러시아를 상징하는 삼색을 사용할 수 있어 ROC 선수들은 정체성 유지에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고 대놓고 말한다.

기계적인 중립에만 애쓴 CAS 결정 탓에 러시아 도핑 징계가 실효성을 잃고 솜방망이가 된 지 오래라는 비판이 나오는 까닭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