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지금이 공직 혁신의 골든타임
루이스 캐럴의 소설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는 주변의 모든 것이 함께 움직이는 나라가 있다. “계속 뛰는데 왜 그대로죠? 제가 사는 곳에서는 이미 다른 곳에 도착했을 텐데요.” 앨리스의 외침에 거울 여왕은 말한다. “정말 느린 나라로구나. 여기서는 다른 곳에 가고 싶으면 두 배는 빨리 달려야 해.”

변화가 일상인 세상에서 조직이 생존하려면 거울 여왕의 말처럼 지금보다 두 배는 빨리 달려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이 디지털 일상을 매일 구현해 내고, 현금 없는 소비를 넘어 카드 없는 소비가 익숙한 지금, 우리는 혁신의 시대를 살고 있다.

그렇다면 공직사회의 속도는 어떨까. 안타깝게도 공직에 들어온 지 30여 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느껴지는 문화는 다르지 않다. 고참들이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고, 근무 연수에 따라 월급도 자연스레 많아진다. 예를 들어 7급 공무원의 경우 사실상 같은 일을 하고 있음에도 1호봉과 최고 호봉의 월급 격차가 두 배를 넘는다. ‘폐쇄적이다. 그들만의 세상 같다’는 평가가 말해주듯, 공직사회는 높아진 국민 눈높이와 빠른 시대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공직 내부는 어떨까. 국가공무원 중 20~30대 비중이 41.4%를 차지할 만큼 소위 ‘MZ세대(밀레니얼+Z세대)’가 주요 구성원으로 자리잡고 있다. 자율성과 공정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그들에게 연공주의와 계급제는 무겁게 느껴질 수 있다. 9급에서 고위공무원이 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며, 그마저도 평균적으로 33.3년이 걸린다. 7급으로 들어와 각 부처의 본부 실·국장에 임용된 사례 역시 손에 꼽을 정도인 현실이 공정하지 않다고 여길 만하다. 린다 그래튼 교수도 ‘대이직(Great Resignation) 시대’라고 언급했듯, MZ세대에게는 공직도 언제든 퇴직할 수 있는 곳이 될지 모른다.

한국의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끈 히딩크 감독이 부임 후 가장 강력하게 추진한 일은 그라운드에서는 무조건 반말을 쓰라는 것이었다. 팀 내 위계질서가 구성원의 역량 발휘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진단 때문이었는데, 일각에서 반짝 이벤트로 끝날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1년6개월의 재임 기간 내내 일관되게 추진해 문화로 정착시켰고, 당시 20대 초반이던 박지성 선수 등이 실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공직 혁신 역시 ‘공직문화를 바꾸자’는 외침을 넘어 변화가 지속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 나가야 한다. 공직시스템을 바꿔야 변화는 혁신이 되고, 문화로 뿌리내릴 수 있다. 이제 연차와 직급, 연공이 아니라 능력과 성과에 기반한 승진과 보상시스템을 만들어 나갈 필요가 있다.

올해부터 인사혁신처가 본격적으로 추진할 청년 인사정책 자문위원회 신설이나 공모 직위에의 ‘속진임용(Fast Track)’ 도입이 연공주의와 계급제 완화라는 공직문화 혁신의 신호탄이 될 것이라고 본다. 청년 공무원이 자유롭게 의견을 내고 정책을 만들며 즐겁게 일할 수 있는 변화의 바람이 불기를 희망한다. 역량 있는 공무원이 자긍심을 갖고 마음껏 능력을 펼칠 수 있도록 성과와 보상이 함께 가는 선순환 구조를 마련하고자 한다.

우리는 갈림길에 서 있다. 떠밀리듯 하는 변화는 이벤트로 끝날 수 있다. 이제는 공직사회 스스로 국민 눈높이에 맞는 공직시스템 혁신을 이끌어 나가야 한다. 지금이 바로, 공직 혁신의 골든타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