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의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수탁위) 권한 확대를 둘러싼 논란이 대선의 정책 이슈로 부상할 전망이다. 국민연금의 기관투자가 역할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긍정론과 국민의 노후를 책임질 국민연금이 정치적으로 활용될 것이라는 반대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16일 국민연금의 주주대표소송 결정 권한 주체를 수탁위로 변경하는 방안에 대해 “부작용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며 “대선 전까지 일단 보류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반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기금운용위원회의 결정을 존중하겠다”고 했다.

양측 선거대책위원회(선거대책본부)는 이날 ‘국민연금이 주주대표소송의 주체를 내부 기금위에서 민간이 중심이 된 수탁자책임전문위로 변경하는 방안’에 대한 후보 견해를 묻는 한국경제신문의 질문에 이 같은 공식 입장을 밝혔다. 정치권에선 경제계에 민감한 사안에 대해 여야 대선 후보들이 서로 다른 입장을 내놓으면서 주요 정책 이슈로 부상할 것으로 보고 있다.

윤 후보는 “국민연금기금은 향후 20여 년간 기금 규모가 두 배 이상 증가할 예정”이라며 “기관투자가로서 책임성을 높인다는 취지는 좋지만 지나치게 힘이 집중된 데서 오는 부작용도 커질 수 있다는 점이 고려되지 않은 듯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수탁위로 변경하는 방안은 일단 보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대선 후 국민연금 관련 제도 전반에 대한 개혁 방안을 논의하는 장을 반드시 마련하겠다”고 주장했다. 반면 이 후보는 “가입자 이익이 최대화될 수 있는 방향으로 결정될 것이라고 생각된다”며 “기금위의 결정을 존중하겠다”고 답했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개편 방안에 반대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여야 대선 후보가 자본 시장의 주요 쟁점에 대해 이렇게 서로 다른 의견을 공개적으로 발표한 것은 이례적이다. 정치권은 이번 개편안에 대한 입장이 ‘1000만 동학개미’ 표심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고 투자자들의 반응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윤 후보 측이 다소 복잡하고 민감한 이슈에 대해 상대적으로 선명한 입장을 낸 것은 동학개미들의 민심이 우호적이라는 판단에서 비롯됐다는 전언이다. 윤창현 의원(정책본부 경제본부장)은 “국민연금기금은 이미 국내 자본시장에서 ‘연못 속 고래’라는 말까지 나오는 상황”이라며 “국민연금이 항상 옳은 결정을 할 수는 없고 실수할 수도 있는데, 이로 인한 수익률 하락은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전가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평소 오랜 기간 주식 투자 경험을 앞세워 기관투자가 역할을 강조해 왔던 이 후보가 이 사안을 두고 다소 중립적인 태도를 보인 것도 의미심장하다는 분석이다. 이 후보는 기금위 결정에 대한 찬반 입장을 유보하면서 “가입자 이익이 최대화될 수 있는 방향으로 판단하면 기금위 결정을 존중하겠다는 것”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수익률 하락 등으로 가입자 이익이 훼손된다면 입장을 바꿀 여지를 남겨 놓은 것으로 해석됐다. 이 후보는 과거 기본소득, 전 국민 재난지원금 등 주요 핵심 공약을 발표한 후에도 민심에 따라 번복하거나 수정하는 경우가 잦았다.

성상훈/오형주/좌동욱 기자 up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