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오름 빼닮은 포도호텔, 제주의 멋 가장 잘 살려"
제주 자연은 특별하다. 한라산, 바다, 오름이 있는 풍광이 사람들을 매료시킨다. 뜨거운 햇볕과 거친 바람, 온화한 기후도 육지에선 느낄 수 없는 매력이다. 이토록 아름다운 자연에 빠져 많은 사람이 제주를 찾고 있고, 이들을 위한 건축물이 제주 곳곳에 지어지고 있다. 한라산과 바다가 보이는 풍광을 소유하고자 자연을 아랑곳하지 않은 건축물이 들어서기도 한다.

이런 변화에 대해 제주의 건축가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나는 제주 건축가다》는 제주 출신으로 제주에서 활동하는 젊은 건축가 19명의 목소리를 엮은 책이다. 대부분 1970년대생으로 제주가 경제적으로 번영하던 시기에 성장한 이들은 과거와 미래의 제주 모습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보존해야 할 전통 가치와 새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 무엇인지 하나씩 풀어나간다.

제주에는 세계적 거장들의 건축물도 여럿 있다. 저자들은 이들이 제주 풍광과 어울리는지는 의문이라고 꼬집는다. 홍건축의 홍광택 건축사는 섭지코지에 있는 안도 다다오의 글라스 하우스나 마리오 보타의 아고라는 제주의 자연 경관과 부조화된 건축물이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더현건축의 현혜경 건축사는 제주어로 ‘바당’이라 불리는 곳을 건축적으로 받아들일 것을 제안한다. 바당은 바다와 육지 사이의 경계로, 바다와 함께 살아가는 제주도인의 삶에 중요한 곳이라는 것. 썰물 때 물이 빠지면서 드러나는 곳도 땅이기 때문에 바다와 인접한 건물을 지을 때 이곳의 풍광을 고려해 건축해야 한다는 얘기다.

저자들이 제주 풍토를 가장 잘 이해한 건축물로 꼽는 것은 제주 중산간 지대에 지어진 이타미 준의 포도호텔이다. 제주 오름이나 초가집 지붕을 연상시키는 형태로 둥글고 나지막하게 지어졌다. 지붕 구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지만, 자연과 전혀 이질감 없이 동떨어져 보이지 않는다.

제주 건축에 대해 저자들은 자연과의 ‘공존과 배려’를 강조한다. 제주는 바람이 거세서 집들을 옴팡진 땅에 낮게 지었다. 혼자 높은 집은 없었다. 제주에서 좋은 건축을 하려면 튀려는 디자인 욕심을 버려야 한다고 조언한다. 제아무리 멋있는 건축이라 해도 주변과 어울리지 않거나 경관을 독점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건축에서는 하나의 틀이라는 양식(樣式)이 자주 언급된다. 건축가에게는 겉으로 드러나는 양식보다는 올바른 판단을 해야 하는 ‘양식(良識)’이 더 중요하다고 저자들은 역설한다. 제주 건축가로서 양식(良識)을 지녀야만 제주의 미래를 보장할 건축 양식(樣式)을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최종석 기자 ellisic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