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출아, 설경아…여기선 冬冬 거리지마라~ 산수화가 춤을 추니
비단결처럼 부드러운 금강이 가로지르는 아름다운 고장이 있습니다. 충북 영동입니다. 관광지와는 왠지 거리가 멀어 보이는 곳이지만 막상 영동을 여행하다 보면 입이 떡 벌어지는 풍경과 마주하게 됩니다. 마치 신선이 머물다 간 듯한 월류봉(사진)은 물론 호랑이의 전설이 깃든 반야사와 양산팔경 중 백미로 치는 강선대까지 황홀한 풍경이 줄줄이 이어집니다. 제법 여행을 많이 다녔어도 아직 볼거리와 우리 국토의 숨은 명소가 많음을 겸허히 고백하게 됩니다. 한적하지만 시리도록 아름다운 영동에서 삶의 위안을 느껴보면 어떨까요?

달이 머무는 비현실적인 풍경 월류봉

영동의 북동쪽 황간면에 있는 월류봉(月留峯)은 이름 그대로 ‘달이 머물다 가는 봉우리’다. 높이 400.7m의 깎아지른 절벽 위에 월류정이 고고하게 얹혀 있다. 월류봉 밑으로는 백화산 자락에서 발원한 석천과 초강천이 만나는 지점이다. 달이 뜨면 부드러운 산세와 시리도록 푸른 물결이 겨울날의 무채색과 어우러져 마치 선경(仙境) 같은 느낌을 준다. 월류봉을 촬영하고 있는 사이 조금씩 눈발이 흩어졌다.

예로부터 이 일대의 뛰어난 경치를 ‘한천팔경(寒泉八景)’이라 하였는데 산양벽(山羊壁), 청학굴(靑鶴窟), 용연대(龍淵臺), 냉천정(冷泉亭), 법존암(法尊菴), 사군봉(使君峯), 화헌악(花軒嶽)이 그것이다.

산양벽은 병풍같이 깎아지른 월류봉의 첫 번째와 두 번째 봉을 말한다. 인적이 미치지 못하는 곳, 산양만이 오를 만한 절벽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청학굴은 제1봉의 중턱에 있다는 자연 동굴이다. 가을이면 단풍이 붉게 물들고 청학(靑鶴)이 깃든다고 한다. 용연대는 월류정 맞은편에 선바위처럼 솟아나 있는 바위를 가리키는데 바위 아래의 소(沼)를 용연이라 부른다. 냉천정은 찬물이 가득한 곳이다. 월류정이 자리한 벼랑 오른쪽 모래밭에서 샘 줄기가 여덟 팔(八)자로 급하게 쏟아붓듯이 흘러나온다고 한다. 법존암은 냉천정 근처에 있었다는 작은 암자로 현재는 사라지고 없다. 사군봉은 황간면 뒤편 북쪽에 있는 명산으로, 그곳에서 몸과 마음을 연마하면 나라의 사신(使臣)이 된다는 곳이다. 화헌악은 한천정 뒤쪽의 산봉우리를 말하는데 봄이면 진달래와 철쭉이 산을 온통 분홍빛으로 물들여 화헌(花軒)이라 하였다.

조선 후기 경성판관을 지낸 문신 홍여하(1620~1674)는 월류봉을 다녀온 뒤 ‘해 저문 빈 강에 저녁 안개 자욱하고/ 찬 달이 고요히 떠올라 더욱 어여뻐라/ 동쪽 봉우리는 삼천 길 옥처럼 서서/ 맑은 달빛 잡아놓아 밤마다 밝네’라고 노래했다. 우암 송시열은 한때 이곳에 머물며 작은 정사를 짓고 학문을 연구했는데 월류봉 아래쪽에 우암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한천정사(寒泉精舍)와 영동 송우암 유허비가 있다.

호랑이의 전설이 깃든 반야사

월류봉 광장에서 반야사까지 약 8.4㎞의 둘레길은 꼭 한 번 걸어볼 만한 곳이다. 월류봉의 수려한 경치에서 시작해 금강의 줄기인 석천을 따라 걸어가면 무릉도원 같은 풍경이 연달아 펼쳐진다. 청아한 물소리를 벗 삼아 걷는 동안 기암괴석의 절경과 숲길, 고즈넉한 시골 풍경이 번갈아가며 인사를 건넨다.

월류봉 둘레길의 끝에 있는 반야사는 ‘호랑이가 사는 절집’으로도 유명하다. 반야사 뒤편 백화산 자락을 유심히 살펴보면 산에서 흘러내린 너덜이 호랑이 형상을 하고 있다. 호랑이는 꼬리를 바짝 치켜세우고 금방이라도 산 아래로 뛰쳐나올 것 같다. 영락없는 호랑이 형상인데 반야사 스님들은 불교 설화에 나오는 사자의 모습이라고 확신한다. 문수보살이 사자를 타고 출현했다는 것. 반야사 호랑이가 가장 두드러질 때는 늦여름이다. 경내에 있는 500년 묵은 배롱나무의 붉은 꽃이 활짝 피면 산속에 있는 호랑이 형상이 도드라져 숱한 사진작가를 불러모은다.

우아하고 고상한 멋이 흐르는 강선대

일출아, 설경아…여기선 冬冬 거리지마라~ 산수화가 춤을 추니
강선대(降仙臺)는 양산면 금강 상류에 있는 여덟 곳의 명승지인 양산팔경 중 가장 아름답다고 손꼽히는 곳이다. 유유히 흐르는 금강의 가장자리에 우뚝 솟은 바위 위에 오롯이 서 있는 육각 정자로, 멀리서 보면 주변 노송들과 어우러져 우아하고 고상한 멋이 흐른다. 정자 위에 서면 푸른 강물이 거칠게 부딪치는 바위 절벽이 아찔하다. 강선대는 물과 바위와 소나무가 어울려 삼합을 이룬 곳이라고도 한다. 양기(陽氣) 강한 바위와 음기(陰氣)의 물을 소나무가 연결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어서다. 조선 중기 형조판서를 지낸 이안눌과 당대 문장가로 명성을 떨친 임제의 시가 정자 안에 걸려 있어 풍류를 더한다. 책을 읽으며 사색하기에도 좋다.

강선대에 얽힌 전설도 재밌다. 어느 날 선녀가 내려와 양산팔경의 중심지인 송호리 모래밭에 옷을 벗어 두고 목욕을 했는데 용이 선녀를 보고 가까이 다가가자 선녀가 놀라 급히 옷을 걸치고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용은 원래 수컷이었는데 선녀를 훔쳐보느라 승천하지 못하고 바위로 남았다고 한다.

영동=글·사진 최병일 여행레저전문기자 skyc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