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인 박태석 변호사, 신간 '일본의 노예'서 톺아봐

우리 역사에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어두운 과거가 많다.

일본군 위안부와 강제징용 문제도 대표적 사례다.

들춰내고 싶지 않은 암흑사이지만 유사한 불행을 막으려면 기억하고 대비해야 한다.

법무법인 월드 박태석 대표변호사는 어두운 역사를 직시하며 그 반복을 막는 데 힘과 지혜를 모으자고 역설한다.

이를 위해 신간 '일본의 노예'는 1945년 4월 독일 나치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유대인들이 홀로코스트 기념관에서 사용하고 있는 슬로건 '네버 어게인(Never Again)!'을 소환해낸다.

두 번 다시 그런 일이 없도록 하자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전쟁 승자가 전리품의 일부로 남녀를 납치해 가는 '인취(人取·사람 납치)'가 빈번하게 행해졌다.

잡아 온 이웃나라 백성들을 노예로 활용하거나 많은 돈을 받고 되돌려 주는 방식이었다.

일본의 해적인 왜구들이 조선인과 중국인을 붙잡아 자국의 농지소유주에게 팔아넘긴 것도 이런 관행에서 비롯됐다.

16세기 중반 대항해 시대에 들어서면서 포르투갈 상인들이 은을 찾아 자국에 드나들자, 일본의 지방 영주들은 그들로부터 무기와 화약을 사들이면서 주변국 남녀를 노예로 넘겼다.

나가사키의 노예시장에서 많은 조선인 포로들은 포르투갈 상인들을 통해 헐값으로 유럽 등지에 팔려나갔다.

임진왜란이 노예전쟁이라고 불린 이유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전국을 통일하고 중앙집권체제를 확립하자, 일본은 외국 침략으로부터 통치권을 지키기 위해 쇄국정책을 폈다.

유일하게 예외로 했던 나라가 네덜란드다.

일본은 네덜란드 상인들에게 '오란다유키상' 또는 '가라유키상'으로 불린 윤락 여성들을 제공했다.

이런 가라유키상 제도는 19세기 들어 메이지유신과 함께 일본인의 해외 왕래가 빈번해지자 젊은 여성들을 해외로 보내 외국 군인이나 상인을 상대로 윤락행위를 제공하는 형태로 변화하게 된다.

19세기 후반에 근대화와 산업화에 성공한 일본은 서양보다 더 혹독한 제국주의 정책을 취하는데, 그 최대 희생자는 가장 가까운 나라인 조선이었다.

태평양전쟁을 계기로 자국 군인들이 중국과 동남아, 남태평양 지역으로 출전하게 되면서 위안부 제도를 만들어 조선 식민지 여성들을 강제로 끌고 가서 전쟁터 성노예로 삼았다.

저자는 거시적으로 볼 때 위안부와 강제징용 제도는 중세시대 일본의 전쟁관습인 '인취'와 '난취(亂取·물건 약탈)', 왜국의 조선인·중국인 납치, 임진왜란 당시의 조선인 연행, 유럽 상인과 군인들을 상대로 한 가라유키상 제도 등과 연결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슬픈 과거들을 그냥 흘려보내지 말고 기억해야 하며 이런 기억들이 국수주의나 배타주의, 혐오주의로 발전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위안부와 강제징용 문제는 단순한 인권 차원을 넘어 한국과 일본의 국가 차원의 현안이 됐으나, 양국 정부와 국민 사이에는 문제의 본질을 놓고 여전히 엄청난 이해의 간극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작은 밀알이 되고자 이번 책을 펴냈다고 한다.

더불어 후속서를 통해 역사적 투쟁을 이어갈 것임도 분명히 한다.

"우리가 밝혀야 합니다.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확보하는 일이기도 하며, 이런 일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이 우리들의 의무이기도 합니다.

한국과 일본은 영원히 함께 살아가야 할 중요한 이웃입니다.

역사적으로도 대부분 서로 도와주면서 함께 발전해 왔습니다.

두 나라가 서로 마음을 열고 이해를 한다면 해결되지 않을 일도 없습니다.

"
월드 헤리티지. 488쪽. 1만8천원.
일제 위안부·강제징용의 뿌리…중세부터 이어진 인권침해 역사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