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산이 무너지듯 들이닥쳤다가 번개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가 하면 하루에 100㎞에 달하는 이동거리를 자랑했다는 '몽골 기병'. 대통령선거를 3개월여 앞두고 정치권에서는 여야를 막론하고 때아닌 '몽골기병'이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리고 있습니다. 주로 당 선거대책위원회 구성과 대선판에서의 민첩한 대응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하지만 최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언급한 몽골기병론은 구체적인 정책과 입법을 적시했다는 점에서 사뭇 결이 다르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 후보는 지난 22일 서울 여의도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을 찾아 노총 지도부와 정책 간담회를 열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이 후보는 공공부문 노동이사제와 공무원 타임오프(근로시간면제제도) 도입과 관련 "몽골기병처럼 신속하게 해내겠다"고 말했습니다. 이 후보의 이날 발언은 "몽골기병은 자신이 타는 말을 대함에 있어 사람 이상의 존중과 신뢰로 믿음을 쌓았고 거기에서 최고의 속도에 기반한 강력한 전투력이 나올 수 있었다"는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의 '뼈 있는' 비유에 대한 답이었습니다.

전후 맥락은 이렇습니다. 김동명 위원장은 인사말에서 "한국노총은 2017년 문재인 당시 민주당 대선후보와 정책연대협약을 맺고 대선승리를 이끌었지만 지난 5년간 왜 외사랑을 했다는 문제가 있다"며 "정책연대의 핵심은 신뢰"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한국노총은 최전선의 병사가 될 수도 있고, 병사와 함께 싸우는 말이 될 수도 있지만 어느 위치에서든 신뢰가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5년 전 민주당의 대선 승리를 도와줬는데, 민주당은 한국노총을 외면했다는 얘기였습니다. 이에 이 후보가 "이재명식 민주당은 다를 것"이라며 입법을 약속한 것입니다.

하지만 두 가지 이슈 모두 노사정 간에 입장이 엇갈리면서 지난 수년간 논의가 진척되지 못한 사안들입니다. 특히 이 후보가 "결단만 하면 되고 당연히 해야하는 과제"로 지목한 공공부문 노동이사제는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였지만 서울시와 경기도 산하기관을 제외하고는 이렇다할 진척이 없는 이슈입니다. 심지어 문재인 정부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낸 윤종원 IBK기업은행장이 노동이사제의 전(前) 단계인 노조추천 이사제 도입을 추진했으나 금융위원회의 '보이콧'으로 무산된 바도 있습니다. 그만큼 정부 내에서도 정리가 안된 이슈라는 얘기입니다.

이런 가운데 여당 대선후보가 "내가 책임질테니 정기국회 내에 처리할 방법을 찾아보라"고 지시하고, "야당이 반대하면 패스트트랙을 통해서라도 정리하라"고 주문한 것입니다.

또 하나의 이슈인 타임오프제도 논란이 현재 진행형인 사안입니다. 이 후보는 "교원, 공무원은 타임오프를 왜 안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며 "공공부문 노조 전임 금지는 매우 부당하며, 특별히 반대하는 사람도 없을 것 같다"고 신속한 처리를 약속했습니다. 그러면서 "타임오프 한도는 노사 간 교섭을 통해 정할 일인데, 법에는 상한만 있고 하한은 왜 없느냐는 의문이 있다"며 "이런 것이 진정한 균형잡힌 시각 아닌가"라고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 후보의 발언은 "노조 전임자의 급여는 노조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경영계의 주장에 배치되는 것은 물론 현재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진행 중인 관련 사회적대화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옵니다. 현재 경사노위에서는 타임오프 현행 한도가 적절한지에 관한 실태조사와 관련 논의가 진행 중입니다. 공공부문 노조전임자 제도 도입과 관련해서는 정부 내에서조차 "국민 세금으로 노조전임자 급여를 줘야하고 인력 충원도 수반되는 문제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사안"이라고 조심스러워 하는 대목입니다.

이 후보가 '패스트트랙'에 이어 '몽골기병'까지 거론하며 신속 처리를 주문한 두 가지 사안을 둘러싼 정치권의 움직임이 주목됩니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