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당국자·전문가 정책세미나…"외교, 국내정치 하위 개념서 벗어나야"
"미중경쟁 속 진실의 순간 다가와…'외교의 부활' 시대 열어야"
미·중의 패권 경쟁이 안보뿐만 아니라 경제·기술 등 전방위로 확산하는 가운데 한국 외교가 가야 할 방향을 전직 고위 외교 당국자와 학자들이 모여 논의했다.

민간 싱크탱크인 니어재단은 15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외교의 부활' 정책 세미나를 열었다.

이 재단의 '새로 그리는 외교안보전략지도 - 외교의 부활' 보고서 출간을 기념해 개최된 세미나로, 미중 전략경쟁 격화 한가운데 출범할 차기 정부의 외교정책 방향에 대해 다양한 제언이 나왔다.

기조발제를 맡은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은 "경쟁과 충돌 요인이 증대하는 새로운 미중관계 속에서 한국이 '머뉴버링'(maneuvering·전략적으로 움직임)할 수 있는 여지가 점점 줄어드는 진실의 순간이 오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제 미중 전략 경쟁은 여타 모든 변수를 압도하고 흡수해 버리는 블랙홀 내지 준거 기준이 되어가고 있다"고 분석한 그는 최근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문재인 대통령을 예방하며 중국의 '핵심 이익'을 존중하라고 밝힌 데 대해 "일종의 레드라인을 제시한 것"이라고 짚었다.

그는 최근 국내에서 벌어진 '요소수 대란'을 거론하면서 "여전히 (중국에 대해) 수입 등 경제 의존도가 높고 다변화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것은 차기 정부 외교당국의 정책 선택에 큰 부담이 될 것"이라고도 전망했다.

이어 "우리 국민들이 자긍심을 갖고 예속을 피하기 위해 어느 정도 불이익을 감수할 수 있다는 태도로 단합한다면 중국도 경솔히 행동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행사에 참석한 전직 당국자와 전문가들은 '각론'에서는 미묘하게 결이 다른 견해를 내놓으면서도 미중 경쟁 가운데 한국 외교가 전략적 공간을 확보할 필요성에는 공감했다.

김기정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은 패널토론에서 "미중의 대립에서 외교적 압박은 점차 심해질 것이라는 데 대한 진단은 같다"면서 "'머뉴버링'할 영역을 어떻게 찾느냐는 처방은 좀 다를 수 있다"고 언급했다.

그는 "국제정치를 이른바 의리의 관점, 감성적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 보은의 관점에서 보는 것을 넘어섰을 때 철저한 이익 중심의 판단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 캠프에 참여 중인 김성한 전 외교통상부 2차관은 30년 이상 지속될 미중 전략경쟁의 '최종적 승자'는 미국이 되리라 전망하면서도 "미중관계 속에서 한국 외교를 양자택일의 순간으로 몰아가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는 데 120% 동감한다"고 말했다.

전직 당국자와 전문가들은 차기 정부가 국내 정치 영향에서 독립적인 '외교의 귀환'을 꾀해야 한다고 공통으로 주문하기도 했다.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은 축사에서 "'부족 외교'(tribal diplomacy), 감성이 지배하는 시각으로는 한국 외교를 이끌어갈 수 없다"며 '탈 부족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전 산업자원부 장관)은 "국내 정치가 외교·안보를 종속 변수화하고 있다"며 "외교의 나침반은 대개 5년마다 새로 교체되고 국내 정치 이념으로 코팅돼 국가의 외교·안보 전략이 일관성을 잃고 국제사회의 신뢰를 잃어 왔다"고 지적했다.

그는 "외교가 국내 정치의 하위 개념에서 벗어나 국정의 양 축으로 세워짐으로써 '외교의 부활' 시대를 열어야 한다"며 '자강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