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된 94년 삶…"영원한 오빠로 남고 싶어"
딩동댕동! 경쾌한 실로폰 소리와 함께 오프닝 노래가 흘러나온다. 그리고 힘찬 소리가 울려퍼진다. “전국~노래자랑!”

33년간 일요일마다 KBS ‘전국노래자랑’을 진행해 온 MC 송해(94·사진). 최고령 현역 연예인이자 단일 프로그램 최장수 MC인 그의 94년 인생 여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송해 1927’이 오는 18일 개봉한다. 생애 처음으로 영화의 주연이 된 그를 9일 기자간담회에서 만났다.

영화가 된 94년 삶…"영원한 오빠로 남고 싶어"
“처음엔 출연하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저는 무대와 공연에 집중하고 있고, 방송으로 대중을 만나왔기 때문에 자신이 없어서 마다했죠. 하지만 완성된 영화를 보니 어느새 저도 모르게 한없이 눈물이 나왔습니다.”

영화는 그의 굴곡진 삶, 그러면서도 묵묵히 걸어온 그의 여정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송해는 실향민의 애환을 안고 살아왔다. 일제강점기 황해도 재령군에서 태어난 그는 6·25 전쟁이 일어나자 연평도에서 피란을 떠나 부산까지 갔다. 원래 이름은 ‘송복희’였다. 하지만 바닷길을 건너온 데 착안해 ‘바다 해(海)’자를 예명으로 쓰기 시작했다.

그는 아픔을 딛고 타향에서 살아남으려고 애썼다. 가수, 희극인, MC 등 다양한 활동을 해나갔다. 1955년 유랑극단 ‘창공악극단’을 통해 가수 활동을 시작했다. 희극인이자 진행자로서의 자질도 뽐냈다. 구봉서, 서영춘, 배삼룡, 이순주 등과 함께 무대에서 활동하며 재치 있는 입담으로 이름을 알렸다. 교통방송 라디오의 시초가 된 동아방송 ‘가로수를 누비며’를 17년간 진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또 아픔이 찾아왔다. 교통사고로 아들을 잃은 것. 이후 “안전 운전 하세요”라는 말을 방송에서 더 이상 할 수 없게 된 그는 라디오 방송에서 하차했다. 영화에선 가수를 꿈꿨던 아들이 남긴 자작곡을 30년이 흐른 뒤에야 듣고 오열하는 송해의 모습이 담겼다. “내가 과연 아버지 노릇을 잘했는가 하는 생각이 머리를 때렸습니다. 지금 이 순간도 미어지듯 마음이 아픕니다.”

그러다 1988년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전국노래자랑’을 만나게 됐다.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노래와 이야기를 들었다. “전국노래자랑”을 외치는 특유의 목소리와 누구든 편안하게 만드는 입담은 많은 사람을 사로잡았다. 남녀노소의 다양한 세대가 그의 앞에선 진솔한 이야기를 쏟아냈다. 그는 “전국노래자랑은 여러분과 만나는 기회가 됐다”며 “대화를 통해 고통받은 분들의 아픔을 덜어드리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살아있는 전설’ ‘일요일의 남자’ 등 다양한 수식어도 얻었다. 그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별명은 뭘까. 송해는 “‘영원한 오빠’라는 별명이 좋다”며 웃었다. 관객들을 향한 희망의 메시지도 전했다.

“저도 극단적인 선택을 생각했던 날이 있었습니다. 남산 팔각정에 올라가서 깊은 낭떠러지를 찾아봤던 순간이 있었죠.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갔어요. 몇 년 후면 100년을 산 사람이 된다고 생각해보니 언제 이렇게 세월이 빨리 갔나 싶습니다. 재기에 재기를 거듭하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기에 오늘날까지 온 것 같아요.”

‘송해 1927’의 연출은 ‘마담 B’ ‘뷰티풀 데이즈’ 등을 만든 윤재호 감독이 맡았다. 윤 감독은 “송해 선생님은 살아계신 역사적 인물”이라며 “이런 분의 영화를 만든 것은 제 인생의 가장 큰 가치이자 영광”이라고 말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