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와 현대제철, 동국제강 등 국내 주요 철강업체가 미국과 유럽연합(EU) 간 철강 관세분쟁 합의로 초비상이 걸렸다. 10여년 만에 찾아온 ‘철강 슈퍼사이클’에 힘입어 글로벌 철강 수요가 늘어나고 있지만 EU산 철강 물량에 밀려 대(對)미국 수출이 제한될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31일 철강업계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는 1일 주요 철강업체와 미·EU 간 철강 관세분쟁 합의 관련 긴급 간담회를 열 예정이다. 철강업체 관계자는 “EU처럼 국내 업체들도 대미 수출 물량 쿼터를 완화하는 등의 조치를 정부에 적극 요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외신에 따르면 미국과 EU는 미국이 일정한 쿼터 내에서 EU산 철강과 알루미늄에 부과한 관세를 없애는 대신 EU는 미국산 제품에 대한 보복관세를 철회하는 내용을 담은 합의를 도출했다. 합의문엔 EU가 매년 330만t의 철강을 무관세로 미국에 수출하되, 이를 초과하는 물량에는 25% 관세를 부과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때인 2018년 3월 국가안보 위협을 명분으로 무역확장법 232조를 적용해 미국이 수입하는 EU산 철강에 25% 관세를 부과했다. 한국은 2018년 협상 당시 25% 관세 부과를 면제받는 조건으로 철강 수출을 직전 3년 평균 물량의 70%로 제한하는 쿼터를 받아들였다. 이로 인해 2015∼2017년 연평균 383만t이던 국내산 철강의 대미 수출 물량은 260만t으로 대폭 줄었다.

EU는 미국과의 이번 합의를 통해 기존에 관세를 면제받은 일부 품목을 포함해 총 430만t의 철강을 수출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미국의 관세 부과 전 물량인 500만t에 근접한 수치다.

국내산 철강에 대한 미국의 쿼터제가 유지되는 한 국내 철강업계의 대미 수출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기 호황으로 미국 현지 철강 수요가 늘더라도 연 260만t 이상의 제품 수출이 불가능하다. 특히 미국 시장에 무관세로 들어오는 EU산 철강과의 가격 경쟁력에서 크게 밀릴 수 있다는 게 철강업계의 우려다. 무관세 혜택을 받기 위해선 미국 현지 생산량을 늘리면 되지만 포스코를 제외하면 미국에 생산공장을 둔 업체가 없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쿼터를 기존 70%에서 확대하거나 EU와 같은 방식의 합의를 통해 미국 수출 물량을 늘리는 게 유일한 대안”이라고 지적했다. 정부는 주미대사관 등을 통해 미국과 EU 간 합의 내용을 계속 파악하면서 면밀히 대응한다는 계획이다.

강경민/정의진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