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호 칼럼] 탄소재난지원금이라도 줄 텐가
“우리 제조업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탄소중립정책 추진이 역효과를 가져올 것은 자명하다. 억지로 감축량을 맞추려면 생산을 줄일 수밖에 없다. (공장) 문닫고 해외로 나가란 말이냐?”

대통령 소속 2050탄소중립위원회가 지난 8일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대폭 상향조정하자 산업계에서는 당혹감을 넘어 분노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기업들이야 해외로 나가면 되지만 근로자들은 어떻게 하나? 탄소재난지원금이라도 줄 작정인가?”

위원회는 2030년 NDC를 2018년 대비 40%로, 기존안(26.3%)보다 크게 높였다. 탄소중립정책의 후폭풍이 세계 경제를 강타하고 있는 가운데 나온 NDC 기습 상향 발표는 기업들의 탈(脫)한국과 일자리 감소 걱정으로 이어지고 있다. “기술은 없는데 감축량을 강제하니 생산량을 줄여야 한다. 유휴 설비를 매각하고 고용을 줄일 수밖에 없다.”

여권 주도로 국회가 지난 8월 2030 NDC를 2018년 대비 35% 이상 감축하도록 명시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안’을 통과시켜 업계를 ‘멘붕’에 빠뜨리더니 이번엔 한술 더 떴다. ‘탄소중립 대못박기’ 수준이다. “다음, 다다음 정권에까지 폭탄을 던진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정부는 경제에 큰 타격이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기업들은 “몰라도 한참 모르는 소리”라고 분통을 터뜨린다. 제조업 비중이 큰 한국은 탄소감축 제약 요인이 많다. 한국 제조업 비중은 28.4%(2019년 기준)로 미국(11.0%) 유럽연합(EU·16.4%)보다 높다. 철강·석유화학·정유 등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업종 비중 역시 8.4%로 미국(3.7%) EU(5.0%)에 비해 높은 수준이다.

취약한 기술 경쟁력 탓에 저탄소·탄소감축 기술을 단기간 내 활용하기도 힘들다. 주요 저탄소 관련 기술 수준(2020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평가)을 보면 풍력 기술은 75(최고 수준 100 기준)로 미국(90) EU(100) 일본(76.4)은 물론 중국(80)에도 뒤진다. 바이오 및 폐자원 에너지화 기술은 78로 미국·EU(100), 일본(85)에 못 미친다. 친환경 바이오 소재 쪽에서도 한국은 85로 미국(100), EU(96), 일본(90)에 처진다.

산업 분야의 탄소감축 기술은 대부분 2030년까지 상용화가 힘들다. 포스코는 철광석에서 산소를 분리시키는 환원제를 석탄에서 수소로 대체하는 수소환원제철기술 개발 시기를 2040년으로 보고 있다. 기존 고로 1기를 전환하는 데 약 5조9000억원이 소요된다. 9기 전체를 바꾸려면 53조원가량이 든다.

주요국에 비해 탄소감축 달성 기간도 짧다. 한국은 2018년을 기준으로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할 계획이어서 추진기간이 32년이다. 영국·프랑스 60년, 독일 55년 등 EU 국가는 50년 이상이다. 미국은 43년, 일본은 37년이다.

미국 EU 중국 등이 탄소중립 ‘과속페달’을 밟으면서 천연가스는 물론 석탄, 석유 등 화석연료 가격이 폭등해 세계 경제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공급망 붕괴로 인한 인플레이션 우려 속에 엎친 데 덮친 격이다. 미국 테이퍼링 및 기준금리 인상, 중국 부동산 부문 부실 등이 상승작용을 일으켜 ‘퍼펙트 스톰’이 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탄소중립 경제로의 전환에는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필요하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의 말처럼 “기업 혼자 힘으로 할 수 없는 영역”이다. 무턱대고 목표만 세운 채 달려가다간 국내 제조업에 치명상을 입힐 수도 있다.

포브스는 올겨울 원유 가격이 배럴당 100달러를 넘을 수 있으며, 글로벌 경제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무엇보다 걱정되는 대목은 우리나라가 대선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여야의 대권 경쟁은 ‘너 죽고 나 살자’ 식의 오징어게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외환위기도 대선 정국이었던 1997년 가을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