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선 후보들의 부동산 공약으로 주목받고 있는 싱가포르형 공공주택이 위기다. 입주 기간이 지연되며 재판매 가격이 올랐고, 풍선효과로 민간주택의 가격마저 14개월 연속 치솟고 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26일(현지시간) 싱가포르 공공주택 입주에 7번 실패한 브랜단 찬의 사례를 보도했다. 통상 3~4번의 시도를 거쳐 당첨되면 입주권을 얻게 되는데, 찬은 7번의 시도에도 성공하지 못했다. 그는 SCMP와의 인터뷰에서 "30대 중반에야 첫 주택에 입주할 수 있을 것"이라며 "지금 성공한다고 해도 너무 늦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싱가포르 공공주택개발국(HDB)의 주택 재판매 시장으로 눈을 돌린 상태다.

하지만 재판매 가격도 올라가고 있다. 싱가포르 부동산포털 SPX의 8월 자료에 따르면 HDB의 분양주택 재판매 가격이 전년 동월 대비 13.7% 상승했다. 최고가를 달성했던 2013년 4월보다 겨우 0.1%포인트 낮은 수치다.

풍선효과로 민간주택의 가격도 올랐다. 지난 8월을 기준으로 싱가포르 주택의 전매가격은 14개월 연속했다. 찬은 "지금 가격은 미쳤다"라며 "물가가 오른 상황에서 그렇게 큰돈을 쓰기는 쉽지 않다"고 SCMP에 전했다.

찬처럼 싱가포르에서 처음 집을 구매하는 이들은 약 80%가 HDB의 BTO(Build-to-Oder, 소비자 주문을 받아 제품을 생산하는 방식) 프로그램을 통해 주택을 마련한다. BTO를 통해 공급되는 아파트는 HDB가 직접 판매한다. 기존의 부동산 재판매 시장에서 거래되는 아파트와 비교해 가격이 저렴한 편이었고, 생애 최초 주택 구입자에 한해 추가보조금(Additional CPF Housing Grant·AHG)도 지급한다. 하지만 당첨 자체도 어려워지고 재판매 가격도 올라갔다. 저렴하고 접근하기 쉬운 주택이 사라져가고 있는 셈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인력난이 싱가포르 공공주택 입주가 어려워진 원인으로 꼽힌다. 싱가포르 건설 노동자의 대부분은 이주노동자다. 이들은 지난해 코로나19로 대거 귀국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단행한 입국 금지 조치도 문제를 심화시켰다. 지난 4월 싱가포르는 인도와 방글라데시의 장·단기 방문자들을 입국을 금지했다.

인구학적 원인도 있다. 베이비붐 세대(1946~1964년생)의 자녀 세대인 에코붐 세대가 주 취업 연령대에 진입하면서 집을 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싱가포르의 베이비붐 세대는 90만 여명에 달한다. 1965년을 기준으로 이들의 출산율은 4.5명을 기록해 당시 정부가 출산 억제 정책을 추진했을 정도다. 늘어난 수요를 감당하기에 공공주택의 공급이 빠르지 않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주택 가격 상승이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부동산 회사 ERA의 니콜라스 막 연구소장은 "정부의 개입이 없다면 HDB가 공급하는 공공주택 재판매 가격이 상승하는 현상은 앞으로 몇 달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한다"며 "적절한 시점에 공공주택이 공급되지 않으면 집을 구하는 이들은 재판매 시장이나 민간주택 시장에 눈을 돌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어른 세르 탄 싱가포르국립대 사회학과 교수는 "주택 문제는 출산율에도 영향을 미치고, 인구 고령화율을 증가시키며, 인구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며 "상당수의 사람들이 미래에 소외된다면 사회적 신뢰 관계를 악화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윤석열 전 총장은 지난 2일 첫 대선 공약으로 부동산 대책을 내놓으면서 싱가포르의 HDB 분양 주택 시스템을 참고한 '청년원가주택'(5년 내 30만 호)의 공급을 약속한 바 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도 지난 8월 공공주택 보급률이 세계 최고 수준인 싱가포르의 공공주택을 벤치마킹하고 직접 배우러 가겠다고 말했다.

박주연 기자 grumpy_cat@hankyung.com